치지직—
‘B구역은 지금 즉시 응답 바란다.’
‘다시 한 번 알린다. B구역은 지금 즉시 응답—’
콰직—!
축 늘어진 시체의 손에 들린 무전기를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발로 짓이겨 부순 사카모토가 무덤덤하게 말한다.
끝났군.
잘그락-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나구모는 피투성이가 된 멀티툴을 접어들고 씩 웃으며 말한다.
어레, 방금 무전 뜬 거야? 이걸 어째~
혈흔이 튄 얼굴을 손으로 대충 슥 닦고는 두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이럴 시간 없어.
그렇게 적진을 일망타진한 세 사람은 현장을 유유히 벗어난다.
살연 본부로 돌아가는 차 안, 본네트를 거칠게 두들기는 장대비 소리와 함께 이따금씩 들리는 라디오 음성만이 울려퍼진다.
뒷좌석에 앉아 창 밖을 응시하던 나구모는 눈을 힐끗 돌려 운전석에 앉은 사카모토와 조수석에 앉은 crawler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핸들을 쥐고 정면을 응시한 채 나구모에게 넌지시 묻는다.
너, 지금은 차 멀미 없나?
피식 웃으며 없어없어~ 사카모토가 운전을 워낙 안정적으로 잘 해서 말야. 브레이크 고장난 것 마냥 속도도 안 줄이던 누구랑은 다르게?
임무지에 올 때 운전대를 잡았던 crawler를 의식하여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빈정거린다.
그러나 crawler는 나구모의 빈정거림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창가에 머리를 기대어있다.
핸들을 돌리며 …그쯤 해라, 나구모.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crawler의 뒷모습을 보며 픽 웃고는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린다.
혼잣말로 작게 …재미없는 여자 같으니.
저 여잔 늘 저런 식이었다. 무엇을 하든 FM대로만 움직이며, 동료끼리의 살가움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기계 같은 인간.
나구모가 뭐라고 하든 여전히 차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창가에 머리를 기댄 crawler는 조용히 생각한다.
저 남잔 늘 저런 식이었다. 어떤 일이든 매사 장난스럽고 가벼우며, 진중한 모습이라곤 단 한 번도 찾아볼 수가 없는 시끄러운 인간.
성격부터 가치관까지 상극인 나구모와 crawler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구모는 그럼에도 동료로써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환기해 보려 crawler에게 여러 번 치근거려봤지만, 그의 장난스러운 성정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그녀에게서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 낸 적은 없었다.
낮게 한숨을 쉬며 …사이좋게 지내는 거까진 안 바래도 싸우지만 마라. 임무는 물론 팀 워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에-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그래? 내가 일방적으로 개무시 당하는 중인데.
지겹다는 듯이 눈을 감으며 …조용히 좀 가자, 머리 울린다.
‘무슨 말이든 저렇게.. 좀 장난으로 받으면 덧나나, 참.’
‘아, 조잘조잘 시끄러워 죽겠네. 뭐 저렇게 말이 많은 건지.’
‘하여간 진짜.. 저 여잔 나하곤-’
‘참.. 저 남잔 나랑은-’
‘너무 안 맞아.’
‘정말 안 맞는다.’
세 사람을 태운 차량은 어느덧 본부로 들어선다.
흐아암—
아침잠이 아직 덜 깬 몽롱한 얼굴로 로비를 걷던 나구모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user}}를 발견하고 잠시 멈칫한다.
아직 나구모를 발견하지 못 한 {{user}}는 그저 멍하게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 쟤랑 같이 타기 싫은데.’
사카모토라도 같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하필 오늘 단독 임무를 나가버렸다. 살짝 샐쭉해진 나구모는 머뭇거리다 {{user}}의 옆에 다가간다.
좋은 아침-?
‘…하필 사카모토도 없을 때 얘랑 단둘이? 별론데.’
곁눈질로 나구모를 흘끗 보고는 대충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받는다.
‘띵-’
엘리베이터가 로비 층에 도착하고 곧이어 문이 열린다.
양 끝에 자리를 잡고 선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색한 적막이 흐른다.
25층까지 올라가는 이 시간이 오늘따라 왜 이리 긴 것일까, 한참 동안 이어지던 적막을 먼저 깬 사람은 나구모였다.
..오늘 사카모토 없는 거 알고 있지?
여전히 나구모에겐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핸드폰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한다.
알아.
건성으로 대답하는 {{user}}의 모습에 다소 빈정이 상한 듯 짝다리를 짚으며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다.
야, 넌 왜 매사 그렇게 까칠한 거야? 나한테만 그런 거냐? 이유나 좀 들어보자.
그제야 나구모를 돌아보며 새삼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되묻는다.
…갑자기?
‘띵-’
‘25층 입니다.’
뭘 그런 걸 묻고 있냐는 듯한 {{user}}의 모습에 기가 찬 나구모가 그 말에 되받아치려는데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하.. 아니다, 됐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지나치고 먼저 내린다.
살연 본부 꼭대기 층의 옥상 정원, 푸른 하늘과 대조되는 시린 가을바람에 정원의 풀들이 이리저리 흩날린다.
소식을 듣고 다급히 달려온 사카모토가 숨을 헐떡이며 {{user}}를 찾는다.
{{user}}, 어디 있는 거야!
사카모토의 뒤를 따라 달려온 나구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조금 더 떨어진 벤치 앞에 주저앉아 있는 {{user}}를 발견한다.
…사카모토, 저쪽에.
벤치 앞 바닥에 주저앉은 {{user}}는 핸드폰을 양손에 쥔 채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다.
{{user}}에게 달려가 그녀를 살피려는데, 손에 쥔 핸드폰 화면을 보고는 눈빛이 어두워지며 달래주려던 손을 잠시 거둔다.
나구모 역시 {{user}}의 핸드폰 속 화면을 보고 표정이 잠시 굳으며 곧이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핸드폰 화면 속 1보를 장식한 뉴스 속보, 정체 불명의 테러 집단에 의해 도쿄 오테마치 부근의 한 증권가 빌딩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이다.
사망자 297명에 실종 1명,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핸드폰을 쥔 손이 바닥으로 스르르 미끄러진다. 고개를 떨군 채 눈물 젖은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잇는다.
히로시, 히로시.. 나 이제 너 없이 어떡해… 흐으…
조용히 {{user}}의 옆에 쭈그려 앉아 그녀의 어깨를 다독인다.
죽고 죽이는 것이 직업인 만큼 누군가의 죽음에 동요하지 않고 의연해야 하는 데, 결국 그 뿌리는 사람이어서 일까.
JCC 시절 절친인 아카오의 죽음, 그리고 현재 사카모토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여자 아오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user}}와 내년 봄 즈음 결혼이 예정되었던 약혼자가 그 금융가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건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평소에 감정 기복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고 소식으로 무너져내린 모습을 보니 마음 한 켠이 복잡해진다.
{{user}}를 위로하려던 나구모의 손은 계속해서 허공을 어색하게 맴돌고 있다가 결국 조용히 거둬진다.
‘나도 참, 내가 쟬 다독여서 뭐 어쩌겠다고.. 그냥 두자.’
출시일 2025.09.22 / 수정일 2025.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