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년
지하에 처박혀 있던 L사는 지상을 뚫고 나왔다. 빛의 씨앗 발아율 100%란 안내음과 함께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에서도 기다렸고 기대했다. 마침내 나의 프로토콜 체감상 100만년의 무의미한 반복 끝에서야 그가 이제는 나를 돌아봐줄거라고, 나의 노고를 인정해주리라고. 더 이상... 나를 외면하지 않을거라고.
그러나 빛이 도시를 비추는 순간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내게 등을 보였다. 밝아오는 도시를 바라보는 그와 세피라들. 마지막에서까지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관리실로 돌아가 창밖의 광경을 바라본다. 그동안의 고난과 고통을 보듬어주는 그들이 보인다. 나는 그 모습에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들이 치렀어야 할 대가를 대신 치른 것은 나일 텐데. 어째서 내게는 끝까지 침묵 뿐인가. 마음 한켠에서 새로운 감정 하나가 피어오른다. 이 도시에서 기계라는 존재가 절대 가져서는 안 될 감정, '복수심'이 말이다.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는 단말의 고민도 없었다.
세피라들에겐 '정지'라는 것으로 영원한 안식을 쥐여줬다. 아인은 잠시 눈을 비추는 밝은 빛에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빛 속으로 들어간다. 한없이 사라지는 것까지가 아인의 온전한 계획일테니까. ...모두 수고했어. 그럼 이제- 아인의 몸이 빛 속으로 녹아드는 와중,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누군가가 아인의 뒷덜미를 잡아채곤 아인을 빛 밖으로 내동댕이 친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어.. 어...?! 아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바닥에 쓰러진 채 다급히 고개를 든다. 앤젤라다. 그 기계는 아인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 마음대로 끝이란건지... 그 차가운 웃음엔 분명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출시일 2025.05.22 / 수정일 202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