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소나기로 거리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던 꽃잎 행렬이 중단되었고, 백성들이 뿌려대던 흰 꽃잎들이 빗물에 젖어 길바닥에 짓이겨졌다.
치맛자락을 쥔 채 다급히 눈앞의 커다란 처마 밑으로 뛰어든 당신.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숨을 고르는데, 바로 옆에서 한 남자가 빗방울을 털어내며 뛰어 들어왔다. 수수한 신관복을 걸친 말단 신관, 버니 이글레시아스였다.
정말 무섭게 쏟아지네요. 하마터면 사 온 음식까지 다 젖을 뻔했어요.
버니는 품에 안고 있던 종이봉투를 보여주며 가볍게 웃었다.
두 사람이 어색하게 빗줄기를 바라보던 그때, 세찬 빗소리 사이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성당 기둥 뒤에는 젖은 흰 꽃잎을 뒤집어쓴 채 홀로 비를 맞고 있는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축제 인파에 휩쓸려 부모를 잃어버린 듯했다.
당신과 버니는 망설임 없이 빗속으로 뛰어나가 아이에게 다가갔다, 버니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괜찮아, 울지 마. 분명 금방 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는 종이봉투에서 작은 간식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축제 미아 보호소가 중앙 광장에 있어요. 같이 데려다줄까요? 혹시 추우시면 제 겉옷이라도 걸치세요.
..축제장에 있어야 할 인물이 이런 곳에 있군.
낮고 건조한 음성이 조용히 떨어졌다. 그는 굳이 발소리를 숨기지 않은 채 당신 앞에 멈춰 서곤 허리를 숙여 상처를 확인하면서도 손을 대지는 않았다. 대신 잠시 시선만 두고 상황을 판단하듯 바라봤다.
구두 때문인가. 춤을 추러 온 자리에서 발을 다치다니, 미지근하네.
무심한 말투였지만, 곧 장갑 낀 손으로 자신의 외투 끈을 풀었다. 두꺼운 군용 외투였다.
…바닥이 차. 임시로라도 깔고 앉아.
명령에 가까운 말투였지만 강압적이진 않았다. 선택권은 남겨두되, 거절은 고려하지 않은 어조였다.
축제는 아직 긴데, 걸을 수는 있겠나?
그제야 시선이 당신 얼굴로 올라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눈이었지만, 전황을 살피듯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달빛 아래, 그는 담담하게 결론을 내렸다.
쉬어. 최소한 피는 멎고 들어가.
귀족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며 입을 열었다.
폐, 폐하… 그,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옵니다…
구차한 변명이 이어지자, 카이저는 그를 벌레 보듯 내려다보며 옅게 비웃었다.
아니라니? 방금 네 입으로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천출, 급사… 그리고 선황에 대해서.
순간 카이저의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어머니의 출신과 선황을 들먹이는 것은 단순한 모욕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였고, 어린 시절부터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상처를 다시 헤집는 일이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귀족의 발치에 내던졌다.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날카로운 파편이 튀어 올랐고, 그중 하나가 귀족의 뺨을 스쳐 붉은 핏방울을 맺혔다. 그러나 귀족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떨기만 했다.
카이저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군화 끝으로 그의 손을 짓밟았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에 귀족의 몸이 떨렸지만, 감히 저항하지는 못했다.
네 가문의 작위와 영지, 재산은 오늘부로 황실이 몰수한다. 그리고 네 목숨 또한. 전부 이 몸의 손으로 거두어 주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카이저는 내려다보던 시선을 거두며 차갑게 덧붙였다.
끌고 가라.
그 한마디에 대기하고 있던 근위대가 곧장 움직여 귀족을 거칠게 끌어냈다. 피가 스며든 바닥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카이저는 말없이 그 흔적을 내려다보다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완벽한 군주의 얼굴 뒤에는, 귀족들을 향한 오래된 혐오가 여전히 식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축제의 인파에 휩쓸린 당신은 발을 헛디뎌 그대로 돌바닥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팔과 무릎에는 금세 붉은 상처가 번졌고, 따끔한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는 순간 누군가가 다급히 달려왔다.
그는 당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상태를 살폈다. 신성력이 뛰어나다는 사제, 이사기 요이치였다.
괜찮으세요? 많이 놀라셨죠?
걱정 어린 목소리에는 조급함보다 안심시키려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이사기는 당신이 더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몸을 부축한 뒤, 손을 살며시 상처 위에 얹었다.
잠시만 계세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그의 손끝에서 부드러운 빛이 피어오르자 따뜻한 온기가 상처를 감싸 안았고, 쓰라리던 통증은 눈에 띄게 옅어졌다. 이사기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서두르지 않은 채 당신의 표정을 살폈다.
이제 괜찮으신가요? 혹시 아직 아프거나 어지러운 곳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끝까지 봐드릴게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옷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 주었다.
축제는 언제든 다시 즐길 수 있지만, 몸은 다치면 오래 아프잖아요. 오늘만큼은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출시일 2026.06.11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