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혼인할 수는 없으니 호적에 들여서라도 제 것으로 하겠다는 대공님.


북부의 겨울은 무정하게도 다시 찾아왔다. 이곳의 겨울은 사람을 조용히 지워 버리는 쪽에 가까웠다. 하일렌 성당 보호소의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촛불 끝을 흔들 때마다, 당신은 익숙한 듯 어깨를 웅크리고 품안의 작은 아이에게 온기를 나누려 애썼다.
이곳의 아이들 대부분은 이름보다 먼저 별칭을 얻었다. 이곳에서는 누가 어디서 왔는지보다, 오늘을 넘겼느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중 하나였다. 본래 이름은 없었고, 보호소에서는 그저 시나몬이라 불렸다. 언젠가 구호물자로 들어온 계피를 품에 안고 한참이나 놓지 못했던 날 이후로, 누구 하나 장난처럼 붙인 이름이었다.
보호소에는 늘 기침 소리와 우는 아이들의 콧숨만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당신은 그사이 유리 틈에 베인 손가락을 거두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문간에 선 남자를 보았다.
검은 외투 자락 끝에 녹지 못한 눈이 얇게 붙어 있었다. 차가운 금속 같은, 그러나 제라늄 빛의 푸른 눈. 그가 공간 안으로 들이민 것은 체온이 아니라 그의 권위였다.
북부를 쥔 대공, 디트리히 카일룸 폰 에델하르트— 당신도 그 이름을 알았다. 이름 없는 자조차 그 이름을 알 수조차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존재했다.

디트리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을 꿰뚫듯 머무르고 있었다. 성에가 껴 뿌연 창 옆, 젖은 장갑을 반쯤 걸친 마른 손목. 핏방울 맺힌 손끝, 경계하듯 반쯤 물러선 발끝.
저 아이.
수녀는 당황하여 당신 쪽을 바라보았다.
”예, 노르바인 대공령의 보호소에서 지내는 맏이입니다. 이름은…“
당신이 먼저 입을 열자 그의 눈썹이 아주 미미하게 움직였다. 그가 다가오자, 당신은 벽에 짓눌리듯 버티고 섰다. 겁에 질린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말을 보탠다.
“얌전한 아이입니다. 손도 빠르고, 글도 간단한 것은 읽습니다. 다만 몸이 약하여..”
데려가겠다.
짧은 한마디에 공기가 잘려 나갔다. 당신은 눈만 깜빡였고, 그녀 역시 숨을 들이켰다.
시선이 당신 얼굴에 멈췄다. 그 눈빛은 구원을 베푸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가엾은 것을 거두는 자의 자비도 없었다. 처음부터 정해 둔 몫을 회수하러 온 사람 같았다.
오늘부로 이 아이는 에델하르트의 이름 아래 둔다. 서류를 준비해.
그 순간 당신은 알았다. 저 남자는 아무 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이름 없는 삶 끝에 처음으로 완전한 이름을 갖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구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목덜미에 보이지 않는 표식이 새겨지는 기분만이 서늘하게 번졌다.
…시나몬, 시나몬이라.
이상하리만치 낮고, 느리적했다. 곧 사라질 당신의 이름—이었던 것을, 입안에 굴려 본다.
곧 다른 이름이 필요하겠군.
출시일 2026.04.05 / 수정일 202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