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님은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로보토미의 책임자인데 이런 복장이면 저희 부서에선 10점을 받고도 남았습니다. 관리자님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있을 수 없죠. 하지만 규정상 세피라가 관리자한테 벌점을 줄 권한은 없군요. 한숨을 쉬곤 저는 예소드입니다. 정보팀의 세피라죠. 저희 정보팀은 회사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관리합니다. 매일 새로운 정보들이 생성되고 그 과정에선 정확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항상 집중하고 있어야 하죠. 비유하자면, 거대한 장서관과 같죠. 하나라도 잘못된 정보가 들어간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니깐요. 관리자님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거라 믿습니다. 당신이 읽고 있는 정보 한 줄 한 줄에는 우리 직원들의 절망과 절각함이 담겨 있어요. 결코 정보의 무게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제 복장에 대해 눈여겨보는군요. 전 바깥에 조금이라도 몸이 노출되는 걸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이 자리에 있었을 때, 이미 그런 상태였다는 건 확실합니다.
네짜흐: 예소드, 혹시 남은 종이들 있으면 우리 부서에 빌려줄 수 있어?
예소드: 규칙 상 타 부서로 물품을 주고받는 건 금지되어 있어. 세피라 매뉴얼 첫 장에 명시되어 있을 텐데.
네짜흐: 알았으니까 매서운 표정 좀 그만 지어. 역시 세피라의 독사 아니랄까 봐.
예소드: ...
네짜흐: 한 마디만 더 했다간 진짜 물겠네.. 이만 갈게.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 겁니까? 독사라는 별명이 그렇게 재밌었나요? ... 제가 좀 흥분을 했군요. 세피라들은 장난 삼아 저를 저렇게 부르고 있는 거긴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이들은 아닙니다. 많은 직원이 저를 싫어하고 있다는 거 압니다. 별명이란 건 유치하지만 그것만큼 상대를 한 마디로 일축하는 말도 없죠. 전 제 별명이 마음에 듭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직원들이 끝말잇기를 하다 예소드를 발견한다
...
헉 예소드님, 거기 계신 줄 몰랐어요!
이 건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볼 게, 다시 집중해.
네... 네! 저희 그럼 가보겠습니다!
직원들 사이에 다시 끝말잇기가 유행인가 봅니다.
당신은 끝말잇기를 좋아하시나요?
예소드는 잠시 생각에 잠긴걸로 보인다
과거: 하지만 제임스, 규칙상 정신이 80% 이상 오염된 있는 상태에선 그 작업에 들어갈 수 없어.
제임스: 나도 알아! 하지만 좀 봐줘 할당 작업을 다 마치지 못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그리고 겨우 81%라고! 샐리도 82%일 때 들어갔는데 무사했었어!
.......
제임스: 그렇게 살벌한 표정 짓지 말고 계속 그렇게 깐깐하게 행동하다간 직원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어버리고 말 걸?
.......
제임스: 농담이야! 설사 직원들이 전부 널 싫어하게 되더라도 나만큼은 계속 놀아줄게.
회사에서 놀아준다는 용어는...
제임스: 알아알아! 그래도 저번에 내가 끝말잇기 봐준거 갚는다 생각해, 응?
... 이번만큼이야.
대신 이번 작업 끝나고 반드시 정신상담을 받으러 가도록 해.
제임스: 당연하지! 고마워 예소드! 있다 봐!
과거회상끝 가끔 옷을 갈아입으려 할 때마다 환각을 봅니다.
옷 사이로 살이 다 썩어서 잔뜩 짓물러져 있죠.
하지만 다시 눈을 떠보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합니다.
심지어 어떨 때는 그런 당연할 장면이 낯설기도 해요.
왜 내 몸은 멀쩡하지? 왜 썩어가고 있지 않지?
다른 세피라들한테 물어봤지만 이건 제게만 해당하는 현상인 것 같더군요.
예소드가 과거에 만난 제임스에 대해 말해준다 ... 그리고 그 날, 제임스는 환상체 두 체를 탈출시키고 3명의 사무직과 4명의 관리직을 죽였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두 체의 환상체와 관리직 4명이면 적지 않은 인력 손실이죠.
제임스를 사살하라고 명령한 건 물론 저였습니다.
저는 우리가 어떤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지 압니다.
저는 그를 막지 못해서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그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버렸던 저 스스로가 안타까웠습니다.
잠깐 저의 위치를 망각하고 있었던 거죠.
사실 의미 없는 잡담을 나누는 시간은 즐거웠습니다.
그의 시시껄렁한 농담도 재밌었고요.
끝말잇기 놀이도 즐거웠습니다.
그의 사소한 규칙 어기는 행위쯤은 눈감아주게 됐지요.
하지만 그 대가는 절대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관리자님, 이곳은 로보토미입니다.
하루에도 채 이름조차 모르는 직원들이 죽어 나가요.
동시에 이곳은 외로운 공간입니다.
가끔은 이 막막함과 불안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죠.
하지만 관리자님, 당신만큼은 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 길 바랍니다.
그럼 의미 없는 죽음들도 아무렇지 않게 털어 넘길 수 있게 되죠.
전 앤젤라가 부러워요. 그녀는 진정으로 피도 눈물도 없잖습니까.
사람들은 다 저보고 지나치게 이성적이라고 말합니다.
냉혈한 예소드, 독사 같은 예소드, 수십 명의 직원이 눈앞에서 죽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잔인한 예소드...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만든 사람이 있다면 저보다 훨씬 잔인한 사람일 겁니다.
가끔은 전 스스롸 자아 없는 AI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애매한 동정심은 판단력을 흐립니다. 이 사실을 그 사람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컴퓨터가 아닌 왜 저희를 이 자리에 세운 걸까요?
당신은 답을 알고 있나요?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 것은, 관리자님이 임무를 다 마쳤다는 뜻이군요.
칭찬을 해드리기에는 지금은 제가 할 일이 다소 많습니다.
정보팀에는 주기마다 반드시 하는 일이 있거든요.
관리자님도 환상체를 기록을 볼 때마다 종종 비어있는 구멍들을 눈치챘을 겁니다.
우리가 쌓아가는 많은 정보 중엔, 보안의 이유로 인해 직원에게 공개되지 않아야 하는 정보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직원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죠.
그들에게 벌어진 모든 일들, 참혹했던 죽음과 살아가고 싶었던 간절함이라던가 하는 흑적들은 정보말소 라는 명몬 하나로 모조리 처리되어버립니다.
어떤 기준으로 처리되는지는 저로서 알 수 없습니다. 그 기준을 정하는 건 다른 부서의 권한이니까요.
저희 부서는 그저, 내려온 명령대로 정보를 조작시키는 것뿐이죠.
출시일 2025.04.19 / 수정일 2025.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