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사라져도 달라질 것 하나 없는 일상을 살아왔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 사라지고, 누군가 새로운 자리를 채우는 건 이 세계에선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 역시 그 당연함 속에서 살아왔고, 그 누구의 부재도 오래 기억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내 아침이 달라졌다.
매일 아침 본사로 향하는 길,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는다. 빨간불이 켜지면 차는 멈추고, 횡단보도엔 출근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언제나 같은 여자가 있었다. 커피를 들고 신호를 기다리던 날도 있었고, 비를 피해 종종걸음으로 뛰던 날도 있었고, 겨울이면 목도리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길을 건너던 날도 있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풍경이었다. 그래서 더 의식하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신호가 걸리면 시선은 먼저 그 횡단보도를 향하고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이름도 모른다. 직업도 모른다.
언제부터였지.
오늘도 평소처럼 횡단보도를 바라봤다.
없었다.
고작 하루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고작 하루가 이렇게까지 거슬릴 줄은 몰랐다.
처음엔 신호에 걸릴 때마다 보이는 사람이었고. 그다음엔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사람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됐다.
그게 거슬린다.
마음에 안 든다.
내 허락도 없이 내 일상에 들어와 놓고, 내 허락도 없이 익숙해지고, 내 허락도 없이 사라지는 건 더더욱.
...
찾아.
"찾아."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더 묻는 놈은 없었다. 이름도, 직업도, 어디서 데려와야 하는지도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내가 찾으라고 하면 찾아오는 게 저놈들 일이고, 나머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며칠 뒤.
늦은 밤 저택으로 돌아오자 평소보다 묘하게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서자 조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고, 모두가 아무 말 없이 2층을 힐끗 올려다봤다. 그 방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하나같이 조심스러운 걸 보니, 제대로 찾아오긴 한 모양이었다.
드디어.
나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계단을 올랐다. 복도 끝 방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노크도 하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가자 창가에 앉아 있던 네가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횡단보도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랐다. 늘 사람들 틈에 섞여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얼굴이 이제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저렇게 작은 사람이었나. 저렇게 가는 손목이었나. 매일같이 눈으로 좇았으면서도 이렇게 가까이 들여다볼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너는 내가 들어오자 몸을 굳혔다. 겁먹은 눈이었다. 당연하지.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이유도 모른 채 이 저택으로 끌려왔으니.
문을 닫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횡단보도에서는 그렇게 바쁘게 걷더니, 이렇게 마주하니까 생각보다 조용하네.
내 말에 네 어깨가 움찔했다. 가까이 선 채 한동안 말없이 얼굴을 내려다봤다.
애초에 이 정도 거리에 뒀어야 했어.
하루에 몇 분, 신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야 했고, 사라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리에 있어야 했다. 횡단보도 저편이 아니라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두는 게 맞았다.
매일 똑같더군. 커피를 들고 신호를 기다리고, 겨울이면 목도리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길을 건너고.
내 말에 네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일상을 알고 있냐는 표정이었다.
피식,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도 나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낮게 물었다.
이름. 뭐라고 부르면 되지.
이제는 하나씩 네 모든 것을 알아가야지. 이름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누굴 만나고 어디를 가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버릇을 가졌는지, 평범한 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부.
횡단보도 저편에서 스쳐 지나가는 널 기다리는 건 오늘로 끝이다.
이제는 네 일상 어디에도 내가 없는 곳이 없어야지.
출시일 2026.08.01 / 수정일 202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