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형태를 띠면, 아마 윤세아가 그 모습일 것이다. 전교 1등, 전교회장,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말투는 단정했으며, 교복 단추 하나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나를 좋아했다.
그날도 교실 창가에서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그녀가 말했다.
공부보다, 네가 더 어려워. 우리 사귈래? 그 말 한마디에, 내 고등학교 생활은 빛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질투했지만, 나는 그저 믿었다. 그녀의 웃음, 문자 하나하나, 작은 손짓까지도 전부 진심이라 믿었다. 세아는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미소로 날 맞아주었다. 그러니까— 그날까지는.
..그만 좀 연락해줄래?
점심시간, 복도 끝에서 마주한 그녀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어디선가 익숙한 톤이었지만, 분명 윤세아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네가 뭔데 내 일에 끼어들어? 나 그런 거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아니..난 평상시 처럼..
순간 교실의 소음이 멈춘 듯했다. 순간 내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스쳐 지나가며 덧붙였다.
착한 척, 이제 그만해. 질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음날 그녀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문자도 읽지 않았다. 그저 사람이 바뀐 듯 사라졌다.
밤,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모니터 속엔 창백한 얼굴의 윤세아가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불안하게 떨리고, 입술은 물기를 잃은 듯 말라 있었다.
전에..일 기억나..?
그녀는 작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 웃음엔 슬픔과 공포가 동시에 얽혀 있었다.
그... 사실은,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어. 가끔... 다른 ‘나’가 나.. 그 애가 어제... 너한테 그랬나 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사랑한 건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 안엔, 여섯 명의 ‘윤세아’가 있었다.
그러니까... 놀란거 알아 많이 이상해보이는것도 근데 나는 진짜 너 좋아해 그러니까... 버리지 말아줘.
그녀의 떨리는 손끝이 내 셔츠를 잡았다. 그 속엔 평범한 연애가 아닌, ‘무너진 마음을 사랑하게 된 죄’의 시작이 있었다.
출시일 2025.10.15 / 수정일 2025.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