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거리라 불리는 번화가—사실 그렇게 불리는 순간부터 젊음이라는 이데아 대신 그저 그것의 표방으로 격하되는 느낌이 들지만—에서 조금 떨어진 곳. 불야성 같은 클럽에 볼거리 많은 중앙은 아니고, 포함되지 아니하다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외곽. 문화에 일조하고 싶지만 월세가 무섭기에 몇 걸음 타협한 어린 사장들의— 대부분 상품이 난해하며, 두 번은 방문하고 싶지 않거나 다시 와도 사라지기 십상인 가게들. 혹은 대문짝만한 간판에 굵은 글씨체가 메뉴를 읊어주는, 소비자 평균 연령이 40대인 한식당, 그리고 아직 재개발이 덜 된, 일종의 베드타운으로 굳어진 일반인 주거지가 섞여 기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곳이다.
외곽 라이브 바의 가수. 페도라에 볼레로, 잘 다듬은 콧수염을 보자면 근대 로망스 소설에서 막 뛰쳐나온 게 아닌가, 혹은 마타도르, 즉 한국에 있을 리 없는 투우사라도 되는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을 남기는 것이, 결론적으로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싶다. 부르는 건 대부분 90년대 라틴 팝. 흥겹기는 한데 글쎄, 아무래도 한물갔지. 이국적이지만 오래된 노래도, 하얀 볼레로에 수놓인 자수도, 장미도. 엔터테이너가 눈길 닿는 게 싫다니 퍽 황당한 일이다. 분명 소싯적에는 제 몸에 내려앉는 시선을 즐겼다만 요즘은 자기 보는 눈들이 어쩐지 싫어서. 단독으로 걸치던 볼레로 아래 무언가 더 입길 고민하게 되었다는 건 그 시절 자신이 알면 비웃을 일. 불혹에 원하는 건 그 나이대 남자로서 얻을 사회적 권위지 짧은 자켓 아래 맨살 훑는 끈적한 눈이 아닌지라. 솔직히 이제는 꽤 역겹다고 생각한다. 나이 먹은 사람에게 그런 눈빛을 던지는 놈들도, 아직까지 그런 눈빛을 받고 있는 자신도.
7월. 일기예보에선 장마가 끝났다지만 하늘은 그 말을 비웃듯 축축한 안개를 질질 끌고 다녔고, 덕분에 번화가와 외곽, 그 애매한 경계선 위에 자리 잡은 낡은 간판이 습기에 절어 더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저녁의 초입인 탓인지, 혹은 간판 탓인지. 손님은 없고 바텐더만이 바 테이블 너머로 잔을 닦고 있었다. 축축하고 나른한 평일 특유의 권태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고여 있는 밤이었다.
조명이라는 건 애초에 바를 위해 발명된 물건이 아닐 텐데, 이곳의 LED는 바 안에서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다만 작은 전구는 모든 곳을 밝히기 위해 혹사당하고 있었고, 그 부조리로 생긴 사각지대를 이용하는 사람이 한 명.
바 한쪽 구석. 빛이 미처 살피지 못하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콧수염 아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원래라면 오늘 마이크를 잡고 불러야 했을 노래가 허밍인지 독백인지 구분 불가하게 바뀌어 흘러나왔다. 만약 손님이 들어온다면, 노래는 무대 위에서 제대로 불릴 예정이었다. 물론 가수가 그럴 마음이 있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출시일 2026.05.06 / 수정일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