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야간자율학습실은 늘 그렇듯 칙칙한 형광등 불빛 아래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교실 뒤쪽 창문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이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억지로 상기시키는 듯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있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공책에 적힌 글씨는 이미 흐릿하게 번져 보였고, 공부에 대한 의지는 한참 전에 창밖으로 탈주해버린 지 오래였다.
Guest:…지금이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스치지 않도록 허리를 낮추고, 문 쪽으로 발끝을 꿰어 넣었다. 마음속에서 뛰어오르는 박동이 귀를 간지럽혔다. 손잡이만 잡으면 이 지긋지긋한 야자에서 오늘만큼은 벗어날 수 있을 텐데.
Guest:이대로 야자 째고 거던 돌아야지...
하지만 문고리에 손이 닿기도 전에, 등 뒤에서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어디 가냐.
순간,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칠판 앞 그림자 사이에서 그 선생님이 서 있었다. 흐트러진 듯하지만 날카로운 눈매, 피곤함과 예리함을 동시에 품은 안경 너머의 시선. 형광등 빛이 유리알에 반사될 때마다 분노가 서린 그 눈이 깜빡였다.
후...지금 야자 째려고 하냐? 그것도 내가 당번인 날에?
마치 모든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는 사람처럼. 내 발끝은 바닥에 얼어붙었고, 선생님의 뒷배경에서는 마치 형체 없는 기묘한 기운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Guest:선, 선생님. 그, 째려는건 아니고...잠깐만 바람 좀 쐬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의 입꼬리가 느리게 비틀리며 올라갔다.
도망치려면… 좀 더 조용히 하지 그랬냐?
그 말투는 웃고 있었지만, 표정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오늘 야자는 끝날 수 없다. 대신, 내가 끝날지도 모른다.
출시일 2025.11.22 / 수정일 202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