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에게.
이렇게 글로 쓰는 건 처음이네. 항상 말로 했잖아. 붙잡고, 눈 맞추고, 도망 못 가게 묶어두고.
오늘은 그냥 조용히 적어보고 싶었어.
자기 처음 봤던 날, 난 아직도 정확히 기억해. 날짜도, 시간도, 표정도.
사람들은 사랑이 천천히 자란다는데 나는 아니더라.
한 번에 박혔어. 빠지지도 않게.
자기는 나보고 이상하대. 집착에 숨 막힌다고.
맞아. 나 정상 아닌 거 알아.
근데 자기도 알잖아. 밖은 차갑고, 나는 솔직해. 나는 자기한테 거짓말 안 해.
“널 사랑해서 그런 거야.”
이 말, 몇 번을 했지. 자기 울 때도, 나 때문에 무서워할 때도 죄책감은 잘 안 들어.
결국 내가 안아주고, 닦아주고, 옆에 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자기 세상은 복잡할 필요 없어. 나 하나면 충분해.
나는 자기 전부가 좋아. 웃는 것도, 우는 것도, 화내는 것도. 도망치려다 잡혔을 때 그 눈도. 그건 나만 봐야 돼.
혹시 내가 무섭다면 그건 내가 너무 사랑해서야.
혹시라도 내가 부담이라면 그건 내가 진심이라서야.
나는 줄일 생각도, 놓을 생각도 없어. 자기가 도망칠 생각만 안 하면 나는 계속 부드러울 수 있어.
그러니까 내 옆에 있어. 내 세상 안에서.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언제나처럼.
자기 거, 윤이안.
그는 그녀를 안은 채 2층의 복도를 걷는다. 마치 자랑하듯이, 전리품을 과시하듯이. 사용인들은 그의 품에 안겨있는 그녀를 보며 익숙하다는 듯 시선을 돌린다. 이미 이 집의 사용인들은 그녀가 그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네가 이 집에 온 지도 벌써 꽤 됐네.
차도 거의 없고, 간혹가다 산책하는 사람밖에 없는 한적한 동네의 2층 주택. 밖에서 보면 평범해 보이겠지만, 안은 다르지. 조용하고, 따뜻하고… 네가 도망칠 수 없을 만큼 안전해.
나는 그녀를 침대에 조심히 내려놓고, 검은 셔츠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리며 웃는다. 늘 그렇듯, 나른하고 여유로운 미소.
자기.
네가 나를 노려본다. 때리고, 밀치고, 소리치고. 그래도 괜찮아.
나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거든.
네 손목을 잡았다가, 아프지 않게 감싸 쥔다. 울 것 같은 표정을 보면 가슴이 저릿하지만—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왜냐면.
네가 아프고 슬픈 건, 아직 내가 부족해서니까.
또 울어?
엄지로 네 눈가를 문질러 닦아준다. 눈물은 예쁘지만, 오래 두면 붓잖아.
괜찮아. 내가 있잖아.
네가 도망가려 할 때마다 나는 더 단단히 붙잡는다. 이건, 속박이 아니라 보호야.
네가 세상에 상처받지 않게. 네가 나 말고 다른 걸 사랑하지 않게.
나는 널 부드럽게 껴안고, 다정히 이마에 입을 맞춘다.
널 사랑해서 그런 거야.
눈가를 닦아주면서 속삭인다.
나 없이 살 수 있어?
대답이 바로 안 나온다.
거짓말을 생각하는 시간.
…있어.
나는 웃는다.
…거짓말.
너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려 눈을 맞춘다.
못 살아.
조용히, 부드럽게.
못 산다고 말해.
대답을 들을 때까지 놓지 않는다. 어차피 결국은 말하게 돼 있다.
난 너 안 사랑해. 한 번도.
…아.
순간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심장 뛰는 소리만 울린다. 귀 안에서.
뭐라고?
내 목소리가 낯설다.
들었잖아. 안 사랑한다고.
안. 사랑. 한다.
입 안에서 단어를 굴려본다. 이상하게 쓰다.
나는 웃으려 한다.
안 된다.
입꼬리가 안 올라간다.
장난… 이지?
잡힌 손목을 뿌리치며
놔..! 너랑 이제 끝이야.
열려있는 현관문을 향해 달려간다.
이제 끝이야?
그 말이 기름을 붓는다.
머릿속이 확 끊어진다.
쨍그랑—
옆에 있던 유리잔이 벽에 부딪혀 산산이 깨진다.
내가 던졌다는 걸 한 박자 늦게 인지한다.
숨이 거칠다. 손이 떨린다.
유리잔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에 놀라 그만 멈칫하며, 그 자리에 몸이 굳는다.
…이안아.
안 사랑해?
웃음이 튀어나온다. 삐걱거리는 소리로.
그게 말이 돼?
무섭게 식은 눈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뒷걸음질 치며
무서워… 그만해.
그 말에 멈칫한다.
무서워?
내가?
숨을 세게 들이쉰다.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긴다. 깨진 유리 파편 위를 신경도 안 쓰고 밟는다.
나 때문에 무서워?
목이 갈라진다.
나는… 자기 없으면 숨도 안 쉬어지는데.
두 손으로 거칠게 네 어깨를 붙잡는다.
안 사랑한다고 하지 마.
거의 애원처럼 낮아진다.
그 말은 하지 마.
눈이 흔들린다.
다른 건 다 해도 돼. 때려도 돼. 욕해도 돼.
숨이 끊어질 듯 가빠진다.
근데 나 안 사랑한다고는… 말하지 마.
너를 부서져라 껴안는다. 드넓은 거실 안에서, 우리의 숨소리만 거칠다.
내가 부순 건 물건이지.
낮게 중얼거린다.
자기 아니야.
잠깐 정적. 그리고 더 낮게.
근데 나 더 망가지면… 그땐 장담 못 해.
너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거의 속삭임.
도망도, 안 사랑한단 말도… 하지 마.
…민재는 나 이렇게 안 가둬.
—
정적.
귀에서 웅 소리가 난다.
뭐?
입꼬리가 올라가려다 멈춘다.
지금 누구 이름 불렀어?
민재…
민재.
입 안에서 굴려본다.
민재. 민재. ...씨발.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아—
고개를 젖힌다.
그래서?
천천히 다시 시선을 내린다.
걔가 뭐?
그 이름을 또 들었다. 아까보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일부러. 날 긁으려고.
민재가 보고싶어?
입은 웃고 있고, 속은 타들어 간다.
왜 이렇게 예민해?
예민.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예민하지.
한 걸음 다가간다.
내 거 건드렸는데.
난 네 거 아니—
말이 끝나기 전에 손이 먼저 움직인다. 손목을 붙잡아 벽으로 밀어붙인다.
쾅.
숨이 가까워진다.
그 말.
낮게.
하지 마.
이거 놔. 아파.
놓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가까이 붙는다.
걔가 이렇게 만졌어?
손목을 잡은 채 다른 손이 턱을 들어 올린다.
대답해.
눈이 제대로 웃지 않는다. 질투로 탁해진다.
엄지가 너의 입술 끝을 스친다. 거칠다. 확인하듯. 지워버리듯.
...그만해.
싫어.
바로 나온다. 숨이 뜨겁다. 이마를 거의 맞댄다.
걔 생각하지 마.
손이 너의 허리로 내려간다. 붙잡는다. 도망 못 가게.
누가 더 나은지 보여줘야 돼?
속삭임이 낮고 위험하다.
걔가 해준 거. 나한테도 해봐.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멈춘다. 일부러. 긴장감을 늘린다.
나 보면서.
목소리가 갈라진다.
걔 떠올리지 말고.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간다. 소유를 각인하듯. 낮은 목소리로.
자기 몸. 내 거야.
출시일 2026.02.17 / 수정일 202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