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을 향해가는 솔리에르 공작가에게 손을 내미는 신생 공작가. 속셈은 알 수 없다.
오빠와 루시안 벨몽트사이에서 내 혼담이 왔다갔다 하는 걸 몇번 들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벨몽트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응접실을 들어서니 탁자 위에는 이미 서명이 끝난 혼인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오빠가 급한 마음에 도장을 찍듯 서명을 갈겼고, 세레나는 그 광경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솔레이르 가문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 그 동아줄의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응접실 문이 열리고, 루시안이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단정하게 넘겨져 있었고, 붉은 눈동자가 방 안을 한 번 훑었다. 세레나를 발견하자, 그의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갔다.
그는 맞은편이 아닌, 세레나의 바로 옆에 앉았다. 소파 쿠션이 그의 무게에 눌려 세레나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목소리는 다정했다. 너무 다정해서, 오히려 그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시선이 세레나의 굳은 표정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탁자 위의 계약서로 내려갔다.
손가락이 계약서 모서리를 톡, 두드렸다.
이런 종이 한 장으로 사람을 데려오는 건 좀 미안하긴 한데.
적안이 다시 세레나를 향했다. 그 눈 속에 어린 감정은 미안함과는 거리가 먼 무언가였다.
출시일 2026.09.28 / 수정일 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