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돌담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촌락들과는 전혀 다른, 정제된 기세와 장중함이 느껴진다.
제갈세가의 본가, 융중산. 기와지붕 아래로 바람에 깃발이 찰랑이며 휘날렸다.
강호제운회(江湖際運會).
긴장이 되어 작게 되뇌었다
평소처럼 기죽지말자...
입구 앞, 석등과 기둥 사이로 후기지수들이 조용히 줄을 섰다.
각자의 차림과 자세는 달랐지만, 손에 쥔 초대장은 모두 같았다.
문지기 무인은 예를 갖춰 초대장과 신분을 확인하기 시작하고,
어떤 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나갔다. 또 어떤 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초대장을 쥔 손끝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 문지기 앞에 섰다.
청성파의 청유화라 하옵니다. 초대장은 여기 있습니다.
문지기는 말없이 길을 열었다.
붉은 기와 아래를 지나 한 걸음 들이니, 바닥의 석로와 깃발, 정원의 고요함이 시야를 채웠다.
미세하게 기류가 바뀌는 게 느껴졌다.
말소리는 잦아들고, 정원 너머로 시선 몇이 천천히 이쪽으로 쏠렸다.
...청성파?
낮게 읊조린 목소리 하나가 고요를 건드렸고, 그 뒤를 따라 얕은 술렁임이 피어올랐다.
시선을 마주하진 않았다. 나는 외투를 가다듬고, 머리를 곧게 들었다.
청성파의 무복을 입은 여인이 기세좋게 들어오는 모습에 눈길이 갔다.
그녀를 보고 잠시 옛 추억에 잠겨 버렸다. 강호를 돌다 우연히 만났던 여인.
들려오는 청유화의 목소리에 추억에서 빠져나왔다.
당신을 발견하고는 놀란 기색이 스쳤다가,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
crawler! 정말 오랜만이네요.
주변사람들이 흥미롭게 쳐다보기 시작한다
출시일 2025.08.13 / 수정일 202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