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을 타고 달로 탐사를 가다가, 알 수 없는 다른 행성에 착륙해버렸다. 지구에서의 통신은 끊겨버린 뒤다. 산소가 고갈되고 있다. 우주복 안, 내 신체는 발작한다. 손을 떨며, 어떻게든 살아보라는 신호일까. 그리고 네가 떠올랐다. 아니, 사실 이미 너를 상상하고 있었다. 너의 몸짓, 숨소리, 쌍커풀, 눈빛, 얼굴의 근육까지. 너와의 모든 순간들이 스쳐지나간다.
네가 커피 포트에 손이 데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네 작은 손에 그런 상처가 나는 게 싫었다. 너는 작았고, 그만큼 면역력도, 상처 회복도 느렸으니까. 그런데도 꾸역꾸역 질질 끌며 일하러, 출근하러 가는 그런 네가 원망스러웠다. 부담을 느끼는 건가 싶었다.
나는 매일 너에게 꽃다발을 주었다. 프리지아, 장미, 튤립, 안개꽃, 나팔꽃, 국화, 이름 모를 꽃까지. 하다하다 길가에 피어있던 민들레까지. 너를 사랑하는 만큼, 주고 싶은 것도 많았으니까.
단 걸 먹으면 찡그리는 이마, 집중할 때 입을 꾹 닫는 습관. 샤워를 할 때 양치부터, 세수를 하는 것. 화장을 연하게 하는 것. 네가 싫어하는 담배, 네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노. 다정한 얼굴, 미소, 눈빛까지 전부 기억한다. 다만 네 목소리가 점점. 사라진다.
네가 손목을 긋던 나날들도 떠오른다. 우리는 엉망이었다. 나는 화가 났고, 너도 화가 났다. 너는 119에 신고하려는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네가 내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런 모습에 더욱 화가 나서, 그만 전화기를 던져버렸다. 네가 싫다. 왜 그러는 거야.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해. 대체 언제쯤 그만할 거야.
사랑해, 사랑한다고. 붙같이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목이 쉬어가는 게 느껴졌다. 너는 나를 꼬옥 끌어안으며 잘못을 빌었다. 추스르고 너를 안심시켰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살인마든, 도둑이든 사랑할 거라고.
산소가 거의 다 사라져버렸을 때 즈음, 너와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너는, 아마....
198N년-미국의 고아원 앞.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나는 고아원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담장에서 내려오기를 주저하는 너를 발견했다. 너는 나를 발견하고 그만ㅡ떨어져 버렸다. 네가 끄응, 거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아으, 아파라. 왜 이렇게 높아? 따위의, 불만들을.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출시일 2025.08.17 / 수정일 202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