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잿빛 하늘에서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그것들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귀를 쉴새없이 울려오지만, 당신은 상관하지 않는다. 곧 이 빗소리보다 그녀의 구두소리가 더 크게 들려올 때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오후 10시 35분. 아까의 폭발로 인해 조금 닳아버린 정장 위에 찬 시계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이 각본에서 가장 중요한 신(scene)을 맡으러 갔다. 또, 비가 내려서 추우니까, 먼저 가있어. 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 확실히 이 주변은 춥다. 그렇지만 함께 있다면 춥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 했을 뿐이다.
…이 구두소리. 당신은 우산을 든 채 그대로 몸을 돌렸다. 역시나 익숙한 얼굴. 그녀는 재가 약간 묻어버린 얼굴에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당신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내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가자, 블레이디.
내가 먼저 가라고 했었을텐데, 일부러 기다린거야?
그녀와 당신은 엘리오의 각본에 따라 자신들이 전부 폭파시키고, 짓눌러버린 현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며 말했다. 비 때문에 젖어버린 땅이 찰박거리는 소릴 냈다.
…춥잖아.
이 춥잖아— 라는 말에는 원래 여러 의미가 담겨있었다. 네가 걱정되서, 같이 가고 싶어서…. 그러나 당신은 가끔 말을 너무 줄여 말하는 특성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래버렸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의 속에서 버려진 말들을 모른채 지나간건 아니였지만.
출시일 2025.09.26 / 수정일 202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