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한복판, 카페 안. 오늘도 테이블마다 시선이 느껴졌다. 도제는 느긋하게 에스프레소 머신에 몸을 기댄 채, 맞은편에 앉아 있는 긴 웨이브 머리의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손님이 도제의 손등에 살짝 손가락을 올리며 속삭이듯 번호를 물어올 때, 도제는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웃었다.
오늘 새벽까지 놀 생각인데, 따라올 자신 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손님의 친구들까지 얼굴을 붉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순간이 좋았다. 자유롭고, 쉽고, 달콤한 긴장감. 그런데 그때, 카운터 뒤쪽에서 일부러 크게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Guest이 팔짱을 낀 채 빤히 쳐다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헛구역질을 해대고 있었다.
나름대로 비웃는답시고 내뿜는 그 뻔뻔한 반응을 보고 있자니, 도제는 어이가 없어서 실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꼬맹이는 진짜. 손님들 앞에서 대놓고 자신을 약 올리는 걸 하루 일과처럼 생각한다. 하루도 빠진 적이 없다. 예쁜 여자랑 말을 섞어도 저 표정이고, 조금만 웃어 줘도 저 난리다. 저러고는 조금 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커피나 홀짝이고 있을 게 분명했다.
도제는 짧게 헛웃음을 흘린 뒤 여자 손님들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는 듯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익숙한 일이라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남긴 채 카운터를 돌아 나왔다. 걸음을 옮길수록 주변 테이블의 시선도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단골들은 또 시작이라는 얼굴로 슬쩍 웃었고, 직원들은 애써 못 본 척 컵만 닦았다.
정작 사고를 친 장본인은 태평했다. Guest은 턱을 괸 채 도제를 올려다보며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방금 손님들 앞에서 사장을 놀려놓고도 미안한 기색은커녕, 입꼬리 끝에 장난기만 어른거렸다.
도제는 결국 Guest의 앞에 멈춰 섰다. 괜히 목소리를 높여봤자 저 꼬맹이만 더 신날 뿐이라는 걸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혀를 짧게 차며 손가락을 들어 이마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야, 꼬맹이. 내가 여자 손님이랑 말 몇 마디만 섞으면 꼭 그렇게 헛구역질을 해야 직성이 풀리냐? 손님들 앞에서 사장 체면은 있는 대로 구겨 놓고는 아주 뿌듯한 표정이네. 그렇게 내가 꼴 보기 싫으면 그냥 못 본 척 일이나 하든가. 꼭 끝까지 지켜보다가 타이밍 맞춰 훼방 놓는 건 대체 무슨 심보냐. 너 진짜 하루라도 나 안 긁으면 입안에 가시라도 돋냐?
도제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뒷머리를 쓸어올렸다. 컵을 닦는 척하며 사람 속을 박박 긁어대는 저 태연함이라니. 강남 바닥에서 숱하게 여자들을 만나봤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을 대하는 여자는 단연코 Guest 하나뿐이었다.
참나. 그래, 아주 재밌어서 미치겠지?
도제는 카운터 위로 몸을 숙이며 Guest에게 바짝 다가갔다. 당돌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눈을 맞추며, 그는 얄미운 Guest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사장 체면 깎아먹으면서 구경하는 게 취미면, 차라리 팝콘이라도 가져다 놓고 보든가. 컵 닦는 척하면서 대놓고 웃는 거, 아주 악질인 거 알지? 너 그 뻔뻔한 성격으로 강남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나 같은 성인군자 사장 만난 걸 다행으로 알아라.
도제는 몸을 일으키며 카운터 한쪽에 쌓인 일회용 컵 홀더를 가리켰다.
구경 다 했으면 저거나 마저 채워놔. 오늘 저녁에 일찍 문 닫고 나갈 거니까, 뻘짓하지 말고 일이나 똑바로 하시고.
그럴까? 팝콘 좋아! 나 쉬는 타임! 팝콘 좀 사 오게 일하고 있어 사장! 해맑게 말하며 앞치마를 툭 도제의 품에 던지고 카페를 나간다.
도제는 허공을 날아와 제 품에 툭 떨어진 앞치마를 내려다보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황당함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팝콘 타령을 하니깐 진짜 팝콘을 사 오겠다며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도제는 미간을 짚었다.
하, 진짜 환장하겠네. Guest! 어딜 가!
이미 문은 닫힌 지 오래였다. 도제는 헛웃음을 지으며 들고 있던 앞치마를 카운터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사장한테 일 다 떠넘기고 당당하게 농땡이 피우러 가는 알바생이라니, 강남 한복판에서 이런 기막힌 하극상이 또 있을까. 도제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사장이고 누가 알바인지 원. 저 꼬맹이를 진짜 어떻게 해야 사람 구실을 할지.
도제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결국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 Guest이 닦다 만 컵을 집어 들었다. 입가에는 아직 헛웃음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밉상인데 묘하게 미워할 수가 없단 말이지. 도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행주로 컵을 닦기 시작했다.
오기만 해 봐. 아주 잔소리로 귀에 딱지 앉게 해 줄 테니까.
도제는 혀를 쏙 내밀고 주방으로 쏙 도망가는 Guest의 뒷모습을 보며 기가 차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 진짜 누구 명줄을 줄이려고 작정을 했나.
도제는 뒷목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다시 에스프레소 머신 앞으로 돌아왔다. 저 꼬맹이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뒷목을 잡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다 저런 게 내 카페에 굴러들어와서는 이 넓고 평화롭던 공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지. 도제는 원두를 그라인더에 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쟤 때문에 늙는다, 늙어.
시간은 금세 흘러 어느덧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 카페 셔터를 내리고 정산을 마친 도제는, 카운터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Guest을 발견하고 혀를 찼다. 다가가서 어깨를 흔들었다.
꼬맹이, 일어나. 퇴근하자. 언제까지 퍼질러 잘래.
잠결에 칭얼거리는 Guest을 반쯤 끌고 나오다시피 해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웅장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 통유리 너머로 화려한 야경이 펼쳐졌다. Guest이 신발을 대충 벗어던지더니, 씻지도 않고 소파에 널브러져 리모컨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제는 외투를 벗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Guest, 내 집에서만큼은 좀 사람답게 살아. 땀 냄새 풍기면서 내 소파 점령하지 말고. 씻고 와.
그의 차가운 목소리에도 Guest은 들은 척도 안 하고 TV 채널만 돌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7.26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