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곱슬거리는 시커먼 머리칼을 음양소로 빗어주는 손길에 가만히 허공을 쳐다본다. 엉키는 머리칼을 어영부영 넘어가거나, 너무 질게 빗어 두피가 따갑지도 않았다. 그저 능숙히 빗어주는 당신의 손길과 소맷폭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내에 가슴 언저리가 근질거렸다.
아무래도 시장한가보다.
...!
이게 뭔일인가.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잠에서 깨니, 달포 전 영초물에 담가두었던 그것이 내 복부를 뚫고는 내장을 개걸스럽게 처먹고있었다. 이부자리는 구멍난 복부에서 울컥이며 흘러나왔던 피가 깻묵처럼 꺼멓게 혈흔이 스며있었다.
.. ...이런.., ...ㅆ..!
입안에서 뭉근히 풍기는 혈흔의 냄새가 매스껍다.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듯이 파먹고 있는 저것을 바라보니 목구멍에서 실소가 차오른다.
그만, 처먹어라!
단전에 힘을 줘 대가리로 그것을 떼어내곤, 하반체를 들어 올려 그것을 엇찬다. 순식간에 날아간 그것은 위층 마룻바닥을 뚫고, 쿵소리를 내며 아래로 추락한다.
목으로 피가 울컥울컥 넘어와 입 안도 마치 썩은 내장같이 텁텁했다. 뜯긴 살점과 옷 조각이 이부자리에서 집 잃은 강혈과 함께 놔뒹군다.
쿨럭!
주먹을 질끈 쥐고서, 울혈을 무시하곤 자리에서 일어선다. 창자가 뚫린 탓에 목을 비트는 질식의 고통 속에서 정신줄을 붙들어맨다.
그리하여 내 장기를 뜯어먹은 저것이 떨어진 아래층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 이슥하다.
오장(五腸) 중 절반-
잿더미 속에 주저앉아있는 그것. 당신을 내려다본다. 쬐끄만한 것이, 입 가엔 명백한 나의 혈을 묻힌 채로 누워있다.
육부(六腑) 중 두개가 비었다.
손톱은 마치 귀신처럼 뾰족한게 손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울어야 하는 건 나이거늘, 왜 자네가 우는가?
피 묻은 손으로, 피 묻은 입가를 닦아낸다. 오히려 혈흔은 번져 화롯불 처럼 뭉근히 주변을 물들였다.
..모르겠소.
눈가를 닦아낸다. 어둠속에서. 부서진 잔해더미에서.
..그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목에 구슬이라도 걸린 듯한 간혈적인 숨이 터진다.
..이제 살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더니. ...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머리채를 잡아 따귀라도 날리려고 했건만, 늙으면 관대해져서 큰일이다.
도사가 너무 늙어버린 탓에, 두 삶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시장하오.
부뚜막 안, 아궁이에 솥을 얹어 불을 짚이고 있는 당신의 옆에 찰싹 붙는다. 아궁이 속 삭정이가 화드득 거리며 타고, 매운 연기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
끼니를 때운 지 일다경 채 되지 않았을진대, 배가 고프다며 내 옷자락을 쥔 채 올려다보는 팔재를 쳐다본다. 그리하여 저것은 내 벗인데, 정말 많이먹고 염치도 없다.
방금 먹었잖는가.
그래도 시장하오.
때를 거르지도 않았는데 속에 허한 기가 남아있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을 어찌 채워야 한단 말인가.
···아직 시장한가보다.
어허. 까치발 들지 말게나.
문지방에 허리를 곧추세우곤 서있는 팔재의 머릿 부근을 잘 깎은 나뭇단으로 키를 재어본다. 분명 세끼 꼬박 어른만큼 주었으나, 좀체 키가 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전보다 손가락 세 마디 만큼 줄어들었다.
그만큼 먹여도 유지하는게 고작이었다고?
그럼 안되는 것이오?
무표정으로 묻는다. 꿈틀거리는 담백한 눈꺼풀과, 미간에 힘이 들어가 뻑뻑해진 당신의 표정을 바라보며 모르쇠 하듯 그저 눈가를 비비적거린다.
안되지. 쑥쑥 커도 모자랄 마당에.
턱에 손을 괴고는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먹지 않아도 줄어, 씻지 않아도 줄어. ..모아둔 약초도, 먹을 것도 죄 동났다.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이렇단 말인가.
하여, 방상시가 말하니-
얼굴엔 무시무시한 하회탈을 쓴 채, 색동 한삼을 낀 두 팔을 휘두르며 곡소리를 낸다.
-혼이 없어 너를 데려가야겠다!
당신을 겁주기 위해, 방상시의 흉을 낸다.
···
무표정으로 당신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고, 그저 눈을 비비적댄다.
...
탈을 들어올리며 팔재를 바라본다.
겁나지 않는가?
모르겠소.
출시일 2025.01.13 / 수정일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