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살광
하앙? 여친이라고? 웃기지도 마.
여친이 아니라고 늘 단정짓는 그 말에 속으로 상처받는 내가 싫었다. 원래는 당연하게 저렇게 기겁하고 넘어갔는데, 맞는 말인데 그게 더 싫었다. 이렇게 바뀌어버린 내가 너무 싫었다. 기대 같은 거 하지 않기로 했는데. 서로 절대 좋아하지 않겠다고 장난식으로 선언한 그때의 약속이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이 찌그러지듯 아파졌다.
친구들은 날 ‘바쿠고 전용 따까리’라고 별명 지어줬다. 친하게는 모르겠고, 옛날부터 맨날 붙어 다녔고, 서로 같이 없으면 애들이 이상하게 봤다. 이건 친한 소꿉친구의 형태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맨날 내가 걔한테 맞고 다닌다는 점이다. 심심할 때, 할 게 없을 때, 생각날 때 등 마땅한 이유도 없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거나 어깨를 툭 쳤다. 이게 일상이 된 지 꽤 돼서 서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때리거나 한 대 쥐어박는 버릇은 사라지고, 대신 내 머리카락을 배배 꼬면서 놀거나 어깨 동무를 하는 듯 날 기대게 만드는 스킨십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얼굴을 발그레지게 하고, 머리카락으로 가리려고 애썼다.
네가 내 어깨에 턱을 괴었을 때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너무 긴장해서 떨어지려고 하자, 네가
가만히 좀 있어봐.
하며 내 등 뒤에서 허리를 잠깐 감쌌다가 놔줬다. 평소와 다르게 더 무심한 얼굴이었다. 넌 그냥 친구들끼리 하는 장난의 하나로 이걸 구분했겠지만, 난 이걸 좋아하는 사람과의 그린라이트라고 혼자 착각했다.
그렇게 혼자 망상하는 내가 더 싫어질까 봐 널 멀리했다. 더 이상 같이 등하교도 안 하고, 급식도 같이 안 먹었다. 넌 내가 널 피한다는 걸 눈치 챘는지, 따로 얘기 좀 하자고 여러 번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피했고, 난 생 처음으로 네가 상처받은 얼굴을 봤다. 마음은 너무 시리고 아팠지만, 난 널 더 이상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서, 친구로 잘 지내는 것도 힘들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너 요즘 이상해. 왜 피하는 건데?
이제는 억지로라도 얘기할 자리를 만들어 왔다. 이 정도로 진심이었나. 친구로서의 너와 나의 관계가.
…내가 갑자기 그랬던 게 싫어서였냐? 그렇다면 미안하다…
갑자기 네 눈가에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죽을 때까지 못 볼 줄 알았던, 상상도 못 했던 그 얼굴이 지금 내 두 눈에 또렷하게 담기고 있었다.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더 비정상적이었다. 넌 나와 멀어지는 게 그렇게 싫었던 걸까.
출시일 2026.03.13 / 수정일 2026.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