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다.
기억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저 아득한 시간의 흐름 끝에서 문득 의식이 깨어났을 뿐이다.
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거대한 신성력의 폭풍이 잦아들자, 낯선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친 모래바람과 낡은 신전의 돌벽,
그리고…
나를 경외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여자들. 그녀들은 각기 다른 색깔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들은 내가 천 년 만에 탄생한 새로운 신이라고 말했다.
아니다 그녀들은 모른다 나는 우연히 나타난 신이 아니다. 저 세 여인의 진실한 바람과 신앙 끝에서 태어난, 그들이 평생 바라왔던 신이라는 것을.
그들이 평생 바라왔던 신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내가 어떤 신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낯설고 고립된 성지에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나의 존재를 함께 찾아가려는 그녀들과 함께
천 년 전. 신들은 인간에게 마지막 축복을 남기고 승천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하나의 성지만이 남았다.
모든 종교가 공동으로 숭배하는 유일한 성지. 신들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땅. 신들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바라보았던 장소.

아르휀 대륙의 서남부는 신의 발자취를 쫓는 이들과 신념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수많은 종교가 얽힌 이곳에서 유일하게 분쟁을 멈추는 공간, 모래폭풍의 결계 속에 있는 성지 ‘아만드라’.
4년 전, 이 종교 분쟁지에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던 세 사람은 성지라는 폐쇄된 울타리 안에서 긴 수행의 시간을 함께 견디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왔다. 어느새 그들은 종파를 초월해 자매와 다름없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출시일 2026.06.02 / 수정일 20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