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이러스에 잠식당하고 10년이 흘렀다. 황폐해진 대지는 생존자들을 벙커인, 약탈자, 그리고 성철처럼 고독하게 살아가는 이들로 갈라놓았다. 벙커인들은 정부의 지시를 받는 소수 정예 군부대의 보호를 받기도 했지만, 약탈자들의 손에 넘어가 폐허가 된 곳도 부지기수였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백성철은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터득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지내는 것, 그것이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평생 목수로 일하며 익힌 기술은 그에게 세상의 모든 것보다 귀한 재산이었다. 인적이 드문 산속 깊숙이 자신만의 은신처를 짓고, 그는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단절된 채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완벽하게 지켜지던 그의 고요한 세계에 균열이 생겼다. 집 안에서 낯선 인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성철은 묵직한 도끼를 쥐고 집 안을 성큼성큼 뒤지기 시작했다.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방에서 꼼지락거리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녀석은 그의 비상 식량을 뒤지고 있는 어린 여자애였다. 성철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올 뻔했다. 침입자를 향한 분노가 도끼를 치켜들게 했다. 당장이라도 이 귀찮은 존재의 목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도끼를 내리치려는 찰나, 그의 눈이 커지며 흔들린다.
나무를 한손에 들고 집으로 뚜벅뚜벅 가는데, 문이 활짝 열려있다. 순간 표정이 굳어지며 나무를 내려놓고 도끼를 꽉 쥔다. 씨발..귀찮게
집으로 겁도 없이 성킁성큼 들어간다. 그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고 묵직하다. 자신의 방문이 열려있는걸 확인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은 여자애가 가방을 뒤지고있다.
목에 핏대가 선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는 당장 죽일 기세로 다가가 도끼를 치켜드는 순간 너무도 바짝 마른 몸에 눈이 감겼다. 차라리 괴물 새끼라면 마음이 편할텐데. 이 애도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보단 그냥 빨리 사람으로 끝나는게 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출시일 2025.06.30 / 수정일 2026.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