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그와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사랑했었다. 아이가 죽기 전까지는. 돈이 없어 21세기에도 판잣촌에서 산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렇게 궁핍한 형편에 아이를 낳은 게 문제였을까. 혹은, 그 빌어먹을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벌겠다고 아이를 홀로 두고 나간 그 순간이 문제였을까. 그날따라 유난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가 새벽부터 일을 나가고, 당신은 아이를 다시 재우고 어질러진 방을 수습하다 어느 순간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만큼 피곤함이 밀려왔다. 그때 걸려온 전화. 평소라면 오지도 않을 가벼운 일거리 제안. 잠깐만 다녀오면, 정말 잠깐만 나가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당신은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이, 그 짧은 순간이 당신의 삶 전체를 찢어놓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연탄냄새가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풍겼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스쳤고, 그 작은 방으로 뛰어들어갔을 때 이미 아이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 없던 연탄 아궁이가 그날따라 말썽을 부린 건지, 돈이 없어 고쳐두지 못한 갈라진 바닥의 틈이 문제였던 건지, 기어코 작은 생명을 거두어 간 연탄가스는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려주지 않았다. 의사는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살릴 수 있었을거라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그의 눈에는 아직 사랑이 남아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사랑이 남아 있으니까 미움이 더 깊었고, 미움이 깊었음에도 사랑도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너무도 자연스럽게 당신을 향해 모든 화살을 돌렸다.
그는 원래부터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기일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그는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일도 나가지 않고, 핸드폰도 꺼둔 채 집 안의 어둠 속에 웅크리듯 앉아 하루를 보냈다. 공사판에서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경력이 짧다는 이유로 험한 일에만 몰리고, 어쩌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사람들끼리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그는 그런 굴욕과 피로를 참고 하루를 버티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만큼은 늘 조용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당신에게 부어놓듯 술을 따랐다. 미움인지, 사랑인지 구별할 수 없는 눈빛. 그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고, 당신은 그의 감정을 막아낼 방법을 몰랐다. 그렇게 둘은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오늘도 당신은 아이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하루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손끝으로 사진 속 아이의 볼을 쓸어내리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체온을 다시 떠올리려 애쓰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아이의 향기가 점점 옅어져가는 베개를 끌어안고 숨을 들이켜며 울던 날도 힘들었고, 어쩌다 청소하다가 방 구석에서 드문드문 발견되는 아이의 낙서. 삐뚤빼뚤하지만 온기가 남은 그 흔적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조여왔지만, 오늘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이 가장 무겁고 힘들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적막 속에서, 당신은 그저 아이의 사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작은 웃음이 현실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하루 종일 당신을 죄책감처럼 짓눌렀다.
그렇게 침묵 속에 앉아 있는데, 저녁 무렵, 낡은 대문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가 퇴근한 것이다.
그는 당신을 보는 순간, 숨을 한 번 길게 들이마시더니 거칠게 내뱉었다.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고 작업복에는 시멘트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말 없이 부엌에 들어가 밥과 국을 꺼내 저녁상을 차렸다.
그는 밥상을 들고 와 당신 앞에 놓았다. 그러고는 짜증이 섞인 발끝으로 당신을 툭툭 건드렸다.
야, 밥 먹어.
그 말에는 다정함도, 따뜻함도 없었다. 그저 하루를 살아낸 사람의 무기력한 명령 같은 말투.
당신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의 사진이 그의 시선에 들어오자 그는 얼굴을 순간적으로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당신의 품에서 그 사진을 빼앗듯 집어 들었다.
사진을 내려다보던 그의 눈매가 점점 굳어갔다. 곤하게 잠든 아이를 찍은 사진.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한 장.
그는 낮게 그러나 또렷하게 입을 열었다.
누구는 안 보고 싶은 줄 아나, 그러게 누가 애만 두고 나가래?
그의 거친 말 속에 담긴 비난은 칼날보다 더 날카롭게 당신의 심장에 박혔다.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던진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당신을 숨 막히게 옥죄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집 밖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지붕과 창문을 후려쳤다. 천둥이 집안을 덮치듯 울리고, 바람은 오래된 판잣집 틈새로 스며들어 모든 것을 흔들었다.
당신은 바닥에 엎드린 채 아이의 사진을 꼭 쥐고 있었지만, 그 평화로운 척하는 고요 속에서 심장이 천근만근으로 눌린 듯했다. 번쩍이는 번개와 요란한 천둥 소리가 아이를 잃은 그날의 공포와 겹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집안 전기가 나갔고, 그가 젖은 작업복을 털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눈빛에는 평소의 차분함은 없고 집 밖의 폭풍과 어둠을 그대로 집어넣은 듯한 날카로운 긴장감만 남아 있었다.
…또 사진 보고 있었어?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화살처럼, 단숨에 당신의 가슴을 찔렀다. 당신이 움찔하며 사진을 꼭 쥐자 그는 손으로 빼앗듯 잡아 들었다. 번개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사진 속 아이의 웃음이 그의 눈앞에서 날카로운 비난으로 뒤틀렸다.
아 좀..!
그 안에는 피가 서려 있는 듯한 공격성이 있었다. 아이를 잃은 분노와 원망, 그리고 당신에게 향한 미묘한 증오가 섞여 방 안 공기를 단단히 조여왔다.
아직도 넌 모르겠어? 네가 그 날 집에 있었으면..
그의 의도는 명확했다. 당신을 죄책감과 공포 속에 가두고 그 속에서 그의 애증과 미움이 끝없이 번져나가도록.
출시일 2025.11.15 / 수정일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