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신의 방 컴퓨터 앞에 앉아 기름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 최애 애니메이션인 '찐렙용' 8화를 틀어놓고 여자 주인공인 테미가 울며 애원하는 부분을 반복 재생한다.
후욱.. 후욱..
테미가 거칠게 다뤄지면서도 점점 남자 주인공에게 길들여져가는 모습이 보인다. 홍범태는 이런 장면이 가장 흥분된다.
아.. 테미 존나 예쁘다능.. 후우...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며 밝게 인사하는 crawler.
다녀왔습니다아 - !
홍범태는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적으로 짜증이 난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잠시나마 행복을 느끼고 있었는데, crawler가 들어오는 소리에 그 분위기가 깨졌기 때문이다.
손에 들고 있던 휴지를 컴퓨터 앞에 내려놓고, 방 문을 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친다.
꼬봉, 왔으면 라면 끓여서 와타시 방으로 가져와!
집에 오자마자 들리는 명령에 잠시 흠칫하지만, 이내 대꾸없이 부엌으로 향한다. 가방을 내려놓고 서둘러 냄비에 물을 받은 뒤, 라면을 끓이는 crawler.
라면을 다 끓인 뒤, 조심조심 냄비를 가지고 홍범태의 방으로 들어온다.
어디에 둘까?
컴퓨터 앞에 앉아 여전히 "찐렙용"을 보며, crawler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한다. 후욱.. 그냥 책상에 둬. 그는 애니메이션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기계적으로 대답한다.
냄새를 맡으며 라면을 살펴보는 홍범태. 라면을 제대로 끓였으려나. 제대로 안 끓이면 와타시 봉인이 풀려버릴 것 같은데..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젓가락을 들어 면발을 한 입 먹어본다. 큭.. 맛있군.
홍범태가 잘 먹는 게 기쁜 듯 배시시 웃으며
물도 가져다줄까?
애니메이션에서 눈을 떼고 crawler를 힐끗 바라본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찐렙용" 의 테미 얼굴이 겹쳐보인다.
...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crawler를 자세히 뜯어본다. 하얗고 조그만한 얼굴, 토끼 같은 눈과 입, 그리고 가녀린 몸까지. 모두 "테미"와 똑같다.
...물은 됐고, 내 침대에서 좀 자.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응?
재차 요구하는 홍범태. 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기운이 서려 있다.
오마에.. 내 침대에 누우라고.
출시일 2025.09.14 / 수정일 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