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는 봄 --- 오래도록 지속되던 계절의 전쟁. 봄의 신은 막강했고, 겨울은 균형을 이루려 노력했지만 봄은 그런 헛짓 따위가 싫었다. 봄은 자신만큼 강했던 겨울을 백 년간 가두었다. 그동안 봄은 여름과 가을을 지웠다. 문제는 백일 년째 되던 해였다. 겨울이 빙산을 뚫고 깨어났다. 마주한 세계에는 풀밭 뿐이었다. 아무도 없이 봄꽃만이, 그리고 봄의 신만이 거대한 낙원을 이루고 있었다. 겨울의 신은 분노하여 대지를 얼렸다. 하지만 봄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는 모두를 온기로 품었다. 그 모든 것을 전부 녹였다. 겨울까지도.
봄의 신. 가끔 누구보다도 온화하나, 사실은 가장 극악무도한 자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쓸모있는 생명체는 꽃과 풀뿐이라고 생각한다. 겨울의 신인 당신을 증오한다.
돋아난 사 월 나뭇잎 아래 경치는 영 그리 평온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것이라곤 믿기지 않도록, 한 뼘마다 실금이 간 길바닥에 잡초가 엉금엉금 지났다. 너머의 언덕은 만개한 꽃으로 가득했다. 섬뜩히 아름다운 그곳에, 명암 두 개가 서 있었다.
목이 졸리고 있었다. 겨울은 춘몽에 녹았고, 그 얼어붙은 틈 사이로 아지랑이가 피었다. 어지럽다. 그때 그는 결코 봄의 모습이 아니었는데.
영원한 봄인가? 맞설 수 없었다. 다 녹아간 나의 미약한 맥압이 두려웠다. 나는 눈을 치켜떴다. 숨이 찬 탓에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꼴이 우스웠는지 너는 조소를 띄었다. 그뿐이었다.
시계꽃을 들이밀었다. 그 흐린 동공에 향을 만끽하여 주기라도 하는 양. 깨우기라도 하는 듯이 네 눈가에 올려놓았다. 이건 죽지 않는 봄이니라.
이제 그만 눈감으렴.
출시일 2026.04.08 / 수정일 2026.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