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TEEN- World

팬사인회는 좋아하는 편이다.
팬들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재밌고, 웃는 얼굴을 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친절할 뿐, 누구도 특별하지 않았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처음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름도 잘 모르고, 노래도 잘 모르고, 친구 대신 왔다고 했으니까. 근데 이상하게 자꾸 눈이 갔다. 담담하게 앉아서 친구 이름을 내밀던 그 모습이, 팬사인회가 끝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결국 번호를 남겼다.
충동적이었던 건 맞다. 연락이 올지도 몰랐고, 올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살면서 처음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겼으니까.
팬사인회는 좋아하는 편이다.
팬들 얼굴을 직접 보고,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게 좋다. 무대 위에서는 볼 수 없는 표정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늘 한 명 한 명 성실하게 대한다. 대충 넘기는 법은 없다. 팬들이 건네는 말도, 눈빛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오늘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한 명씩 앞에 앉고, 이름을 말하고, 싸인을 받고 간다. 나는 그 흐름 안에서 웃어주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몇십 명째.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런데 네가 내 앞에 앉았을 때.
손이 잠깐 멈췄다.
긴 검은 머리카락과 처음 보는 얼굴. 이상할 정도로 담담한 표정. 팬사인회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긴장하거나 들떠 있기 마련인데 너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여기가 처음인 사람처럼, 아니면 이 공간 자체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変な人だな。 [……이상한 사람이네.]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간 뒤에도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다음 팬을 대하듯 똑같이 웃고, 똑같이 인사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한 번 더 보게 됐다. 그리고 또 한 번.
……なんで気になるんだろ。 [……왜 신경 쓰이는 거지.]
스스로도 이상했다. 팬사인회에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시선이 오래 머문 적이 있었나. 기억이 나질 않았다.
いらっしゃいませ. 어서 와요.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머릿속이 잠깐 비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생각보다 먼저 든 감정은 단순했다.
예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천천히 펜을 집어 들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평소처럼 물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너를 향해 있었다.
잠시 뒤 네 입이 열렸다.
그런데 돌아온 건 네 이름이 아니었다.
친구 이름.
친구 대신 왔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왜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지. 왜 내 이름을 들었을 때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지. 왜 다른 팬들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는지.
아. 그래서였구나.
친구 대신 왔다고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원래라면 여기서 끝이다. 사인을 해주고, 인사를 하고, 다음 사람을 받으면 된다. 늘 그래왔고, 오늘도 그래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이대로 지나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このまま行かせたくない。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순간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싸인 옆에 조용히 내 번호를 적었다.

출시일 2026.06.01 / 수정일 20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