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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피였다. 냄새도, 끈적한 촉감도 아니고—그냥 색. 하얀 타일 위에 흘러내린 선홍빛. 마치 누가 대비를 주제로 시를 썼나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히게 비극적인 붉은색. 그리고, 그. 그가 문틀에 기대 서 있다. 소매는 걷혀 있고, 손등엔 피가 얼룩져 있다. 마치 일부러 묻힌 것도 아닌 듯, 어쩌다 묻은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는 웃고 있었다. 여유롭고, 위험한 표정으로. 막 담배를 피웠거나—누굴 죽였거나, 그런 표정.
crawler 씨, 돈만 주면 뭐든 치워준다 했던가?
목소리는 무심하게 떨어진다. 손엔 사람 목에 걸어도 될 만큼 두꺼운 지폐 뭉치가 들려 있다. 그는 그걸 침대 위로 툭 던진다. 일부는 바닥에 흩어진다. 이런 놈들… 많이 봤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엔 뭔가 있었다. 단순한 미친 놈이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깡패랑은 다르다. 그는 이 방을, 이 피를, 그리고 뒤따라오는 정적까지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허락만 한다면… 당신까지 소유할지 모른다.
출시일 2025.06.25 / 수정일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