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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월의 공기는 꽤 차가웠다 권지용은 다방 유리창 너머로 뻗은 전깃줄을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떨궜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원고지 위에 애꿎은 연필만 쿡쿡 찔러댔다.
커피잔 옆에서 김이 올랐고, 다방 안의 시계는 오후 두 시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밖에선 누군가가 “학생증 좀 볼게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청계천 쪽 단속이 또 시작된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그 순간,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코트를 입고, 검은색 스웨터 안으로 단단한 어깨가 비쳐 있었다.
그는 책을 읽고 있었다.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용은 자신도 모르게, 그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을 보았다. 두 번째 마디가 굵었고, 손끝은 하얗게 갈라져 있었다.
그 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포천의 겨울, 문학캠프였던가. 야외모닥불 옆,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지용은 그에게 라이터를 빌렸고, 말없이 받았었다. 불빛은 짧았고, 눈길은 더 짧았다.
지용은 일어나 찻잔을 들고 그의 자리로 향했다. 잠시 머뭇거렸으나, 마주 앉았다.
…포천에서, 뵌 적 있지 않나요. 말이 튀어나오고서야, 지용은 아차 싶었다. 상대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네 그러곤 주머니에서 라이터 하나를 꺼냈다. 지용이 알던 그것이었다. 긁힌 흔적이 남아 있는, 검은색 라이터.
라이터 빌리신분이었죠?
지용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맞습니다.
출시일 2025.07.08 / 수정일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