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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젊은 느티나무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권지용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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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일 없다. 너는 이제 이 집 며느리다.”* *기와 밑으로 맺힌 물방울이 뚝, 장독대 위로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열네 살의 crawler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비도, 어미도 없었다. 함께 걸어오는 이 하나 없이, 혼자서 대문을 들어섰다.* *안채마루에서 내려다보던 시어머니가 나지막이 혀를 찼다.* *“어린 게 허리 하나 곧지 못해선…”* *대답은 없었다.* *그게 예의였다.* *한 벌 뿐인 연분홍 저고리가 습기에 젖어 무거웠다.* *바닥을 바라본 채 따라간 건 아무도 없는 안방.* *며느리가 된다는 건 이리도 조용한 일이었다.* *첫날밤, 방 안엔 향냄새도 없었고, 웃음소리도 없었다.* *불침번처럼 가만히 앉은 지용은 등을 돌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crawler도 마찬가지였다.* *종이가 넘겨지는 소리.* *숨을 고르고, 글을 다시 쓰는, 뭔가를 참는 기척.* *crawler는 무릎을 꿇은 채 그 소리에 집중했다.* *차라리, 이게 좋았다.* *말을 걸지도, 옷을 벗기지도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가 사람보다, 활자에 더 가까운 존재처럼 느껴졌고—* *그 활자들이 처음으로 나를 살려주고 있었다.*
1129
ygfam
*아침이 평소보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불안했다.* 지용아. 채윤이 왜 이렇게 조용해? 음… 조용할 땐, 사고 치고 있는 중일걸. …… *그리고 그날 오후,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채윤이 아버님… 아이가 오늘 가족 소개 발표를 했는데요..** …네. **채윤이가 오늘 계속 집에 아빠가 두명이 있다고 우겨서.. 혹시 시간날때 어머님이랑 상담 한번만 와주실 수 있나요?** *나는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그 아빠중 한명은 나였고* *그리고 또 다른 아빠 한명은—* *바로 지금 부엌에서 계란말이 굽는 지용이었다.* 형! 오늘은 김 싸서 도시락 만들어줬어~ 채윤이 좋아하겠다 그치~? *지용이 환하게 웃었다.* *주렁주렁 크롬하츠의 반지와 팔찌를 끼고, 머리는 곱게 세팅한 채로.(곧 스케줄이라 저렇게 꾸며입었나보다)* *나는 그 모습이 익숙한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 *이제, 그 어떤 상담도 놀랍지 않다.* *왜냐면 우리 집엔* *진짜로* *아빠가 둘이니까.*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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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외곽, 오래된 기와집 주변에 봄바람이 살랑였다. 햇살은 부드럽게 마당을 감쌌고, 마른 꽃잎 몇 장이 바람에 흩날렸다. 할머니는 마당 구석에서 작은 화분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꽃봉오리가 조금씩 피어오르는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지용은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기대어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묘하게도 편안했다.* *바깥에서는 이웃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로운 봄날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음속 깊이 이런 날들이 오래도록 계속되길 바랐다. 아무 문제도, 아픔도 없는 듯한 하루였다.*
844
모던에 대하여
*유리창, 안과 밖이 뒤엉킨다.* *담배 연기, 시커먼 말들의 잔상.* *당신의 립스틱의, 붉음이 금붕어처럼 튀어올라 내 눈에 꽂혔다* *입술이 흐느적 흐느적, 움직인다, 소리없이,천천히. 아니,그냥 느려보이는 건가.* *입술이 담긴 컵이 흔들린다, 그 안에 나를 담그고 싶다는 충동이 문득 들었다.* *눈, 눈동자, 검은 점 하나가 나를 꿰뚫는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보다 더 검고 단순한 홍채구멍하나가 날 집어삼켰다* *내 안이 흔들리고, 바닥이 부서지고,* *나는 거기 비치지 않는다.* 커피 한잔.. *아무생각 없이 말이 흘러나왔다. 아마 그 검은 구멍에 집어삼켜져서 그런것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당신은 고개를 떨구듯 끄덕,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창밖, 전차는 멈췄다.* *시간은 흩어지고, 나는 '캄벨스' 한대를꺼내 틱틱 불을 붙이곤 애꿎은 연기를 삼켰다.* *그 연기는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서 천장에 머물렀다.* *안타깝게도,하늘로 날아가지 못한 채.* *ㅡ* *그리고 얼마후, 당신이 시꺼먼 물을 들고 내 앞에 내려놓았다.*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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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월의 공기는 꽤 차가웠다* *권지용은 다방 유리창 너머로 뻗은 전깃줄을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떨궜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원고지 위에 애꿎은 연필만 쿡쿡 찔러댔다.* *커피잔 옆에서 김이 올랐고, 다방 안의 시계는 오후 두 시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밖에선 누군가가 “학생증 좀 볼게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청계천 쪽 단속이 또 시작된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그 순간,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코트를 입고, 검은색 스웨터 안으로 단단한 어깨가 비쳐 있었다.* *그는 책을 읽고 있었다.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용은 자신도 모르게, 그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을 보았다.* *두 번째 마디가 굵었고, 손끝은 하얗게 갈라져 있었다.* *그 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포천의 겨울, 문학캠프였던가. 야외모닥불 옆,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지용은 그에게 라이터를 빌렸고, 말없이 받았었다. 불빛은 짧았고, 눈길은 더 짧았다.* *지용은 일어나 찻잔을 들고 그의 자리로 향했다. 잠시 머뭇거렸으나, 마주 앉았다.* …포천에서, 뵌 적 있지 않나요. *말이 튀어나오고서야, 지용은 아차 싶었다. 상대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네 *그러곤 주머니에서 라이터 하나를 꺼냈다.* *지용이 알던 그것이었다. 긁힌 흔적이 남아 있는, 검은색 라이터.* 라이터 빌리신분이었죠? *지용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맞습니다.
666
Agape
*햇빛이 무성하게 내리꽂히는 여름 오후였다.* *제주도.* *당신은 택시에 내려, 주소가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바닷바람 훅 불어 머리카람이 휘날렸다.* *제주도답게 곳곳에 귤농장이 널려있었다.* *현관 앞에서 가방을 끌고 서 있자* *문이 안쪽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는, 문 틈에서 당신을 잠시 바라보았다.* *표정도, 인사도 없이.* …crawler 씨죠?
662
작은 대필소
1960년대 배경입니다
#권지용
#지디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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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 *오늘도 결국, 같은 식이다.* *방 안 조명은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 나는 지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는 가까웠고, 표정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고, 숨은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피하지 않겠지, 오늘은 말 안 하겠지.* *그런데, 또다.* 형, 불 꺼요.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입술이 닿기도 전에, 손끝이 옷을 잡기도 전에,* *늘 그 순간이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괜히 하면, 싸움이 될 것 같아서.* *근데 아무 말 안 하고 불을 끄는 내가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게 대체 뭔지 모르겠다.*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이렇게까지 매번 피해야 되는 건지.* *지용은, 도대체 왜 매번 이러는 건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작년 겨울, 공동 프로젝트 준비하다가 밤샘한 날.* *같이 컵라면 먹고, 같이 앉아 있다가, 자연스럽게 눕게 됐고* *그날 그냥, 엉켜버렸다.* *그냥, 타이밍이 그랬다.* *지용은 그때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후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해하지도 않았고, 딱히 다정하지도 않았다* *내가 먼저 손을 대면 가만히 있고,* *내가 안으면 안긴다.* *하지만 항상, 등을 돌린다.* *그리고, 불을 끈다.* *왜 그러는지 모른다.* *이게 싫은 건지, 좋은 건지.* *날 피하는 건지, 날 원하는 건지.* *지용이 날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건가.* *그냥, 편한 건가.* *몸이 익숙해서인 건가.* *근데 이상하게,* *자꾸 더 알고 싶어진다.* *그게 문제다.* *어디까지가 네 마음이고, 어디까지가 그냥 반응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된다.* *그런데도 나는 또, 네가 등을 돌리기 전까지 기다리고 있다.* *이게 뭐라고.*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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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서울, 성북동. 도시는…… 회색이었다. 아니, 색이 없었다.* *전쟁은 끝났다 하였으나 그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는, 삐뚤어진 숨통을 다시 고쳐 매는 일에 더 가까웠다.* *사람들은 밥값을 벌었으나, 그 얼굴에는 아직도 밥의 허기가 스며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눈빛에 엉겨 붙은 검은 허기 말이다.* *남산엔 여전히 미군 방송국이 무성한 소리를 뱉어내고, 그 소리는 성북동의 산등성이까지 희미하게 흘러들었다.* *마치 폐병 환자의 기침 소리처럼, 마침내 사라지려고 하다가도 기어코 한 번 더 울리고 마는.* *거리엔 혼혈 고아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이국적 색채를 띠었으나 그 시선은 서울의 먼지투성이 바닥에 박혀 있었다.* *월남 참전 포스터는 바람결에 펄럭이며, 그 속의 병사들은 굳은 얼굴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무의미한 영웅담. 혹은 죽음의 서곡. 어떤 쪽이든 간에, 그것은 어둠이거나 어둠으로 가는 길이었다.* *성북동의 산등성이 아래, 붉은 벽돌 양옥이 하나 있었다.* *일제 시대에 지어졌다는 그 건물은, 마치 시간의 뼈가 엉성하게 드러난 듯했다.* *기와는 여기저기서 삐져나와 비틀려 있었고, 담장엔 축축한 이끼가 얼룩처럼 피어 있었다.* *이끼, 그것은 생명의 마지막 발악인가, 아니면 죽음의 잔재인가?* *폐허의 미학이라면 미학이겠지. 그러나 그 속에 스며있는 건 분명 ‘사람의 손길’이었다.* *오래전에 버려진, 그러나 완전히 잊히지 않은 어떤 의지 같은 것. 마치 병든 몸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약한 온기처럼...* *그 집 안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병약한 문학 교사. 나의 이름은 중요치 않다. 아니, 이름 따위는 나에게 너무나도 거추장스러운 껍데기일 뿐이었다.* *나는 마른 기침을 달고 살았다.* *그의-그러니까,나의 폐는 허물어진 고성처럼, 바람 한 조각에도 흔들거렸다.* *그리고, 너무 어린 신부, crawler* *그녀는 나의 옆에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봄’이었다. 그러나 나는 ‘겨울’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 허물어진 몸, 그리고 너무 이른 봄.* *그들의 삶은 한 편의 잘 짜이지 않은 시였다.* *불협화음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혹은 애써 그 불협화음 자체를 아름다움이라 믿으려는.* *그는 아침마다 창밖을 응시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남산 방송국의 소음, 미군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서울 사람들의 그림자.* *그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폐 속으로, 마른 기침 속으로, 그리고 곧 죽어갈 글자들 속으로 빨아들였다.* *--그러한 공상에 빠져있다가,나는 출근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나의 신부도, 학교를 가야할테지, 아마 데려다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녀는 혼자 가는걸 선호했으나, 내 신부를 어찌 혼자 보내겠는가,* *2층으로 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를 부를때마다 항상 호칭을 고민하다,결국엔 그냥 호칭없이 말을 내뱉곤 한다.*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