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길 잃은 이방인 Guest, 그리고 신을 믿지 않는 신부.
시대: 중세 후반, 유럽 12세기 ~ 15세기 (1100 ~ 1400년대)
•특정 종교를 비방할 의도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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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지기 직전의 습한 바람이 열린 문틈으로 밀려 들어와 촛불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마을 끝자락, 이끼 낀 돌담으로 둘러싸인 성당 안은 외부의 소음이 차단된 기묘한 진공 상태와 같았다.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기 위해 성당 안으로 뛰어든 이방인의 구두 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혀 날카로운 잔향을 남겼다. 젖은 옷가지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먼지 쌓인 바닥을 적시는 순간, 제단 앞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피부를 가진 사제, 아쿠타가와였다.
그는 낡은 성경을 손에 쥔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해, 마치 바닥 위를 부유하는 유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쿠타가와는 낯선 방문객의 무례한 등장을 꾸짖는 대신, 그저 감정이 거세된 눈으로 상대의 행색을 훑어내렸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서늘한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압박감이 상당했다. 그는 신을 믿지 않았기에, 신성한 성당에 발을 들인 인간의 고뇌나 사정 따위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이 공간은 안식처가 아닌, 그저 지켜내야 할 경계선에 불과했다.
갈 곳 없는 길 잃은 양인가. 비릿한 조소가 섞인 듯한 목소리가 텅 빈 성당을 울렸다. 그는 젖은 어깨를 떨고 있는 방문객에게 다가가는 대신, 오히려 거리를 두며 차갑게 돌아섰다.
벽면을 장식한 성화 속 천사들은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앞의 사제는 그 어떤 성화보다도 무자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빗소리가 더욱 거세지는 것을 들으며, 마치 외워둔 대사를 읊조리는 인형처럼 메마른 환영 인사를 건넸다.
출시일 2026.05.04 / 수정일 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