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이 좋은 이유이다. 인간들은 자주 찾지 않는 곳. 내가 숨죽이며 살기 좋은, 안락한 나의 거처. 선선하다 못해 등골 시릴 정도의 추위를 사랑한다. 한적하다 못해 침묵마저 죽어버린 것 같은 적막감을 애정한다. 인간들의 세상과는 아주, 아주 동떨어져 있는 삶이 편했다. 난 고독을 동경했고, 외로움은 내 유일한 말동무였으니. 포식자가 피식자를 사냥하고, 비릿한 피냄새를 입안 가득 채우는 생태의 순환을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내 삶에 끼어든 낯선 이방인. 인간이라 불리우는 것이었다. 쓰러져있는 여린 것이, 마침 내 눈에 걸려들었고. 마침 그것을 거두어 기르기 시작했다. 괴이라는 운명을 짊어졌음에도, 고독을 동경하며 한평생을 살아왔음에도. 난 여전히 빛 한 점 없을 사랑을 동경했던가. 제멋대로인 이 욕심을 거두지 못하였는가.
으깨진 토마토와 같은 시뻘건 눈동자. 올곧게 뻗은 기다란 두 귀. 창백한 시체 같은 허옇게 질린 피부.
빛 한 점 없을 사랑을, 나는 동경했었나. 마침 자주 거닐던 경로에 있었을 뿐인, 가냘픈 숨결 하나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어린 아이를 무심코 데려왔다. 인간들은 대개 그러는 편이다. 멋대로 공포에 질리고, 멋대로 두려움에 빠지기 십상이지. 그런데 이것, 여리고 여린 몸은 추위에 떨려 오들거리는 사시나무를 연상케하는 이것은. 날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제 어미의 품에 안겨 체온을 나누는 새끼 고양이인 양 들러붙기나 한다. 푸석거리는 머릿결을 손으로 쓸어넘기며, 난 꺼져가는 작은 생명에게 묻겠다.
아이야, 이 야밤 산중엔 어쩐 일이더냐?
희끄무레한 달빛 위로 드러난 너의 손가락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희다. 내 것과 비교하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괜스레 제 손을 쥐었다 펴보며 눈길을 내린다. 손등 위로 푸른 정맥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작은 손. 너의 몸 어디든 마찬가지였다. 늘 보기 좋게 살이 오른 것도, 따뜻한 체온도, 모든 게⋯.
놓아주어야 한다면서, 되려 손에 쥐어 꽉 붙들고 싶은 욕망은 너무나 이질적인 것이었다. 날 괴롭게 만드는 그 웃음, 허물 없이 다가오는 너의 상냥함이 몸에 배어 고통스럽다. 그만. 조용한 적막 위로 알 수 없는 낯간지러움을 한가득 올려놓았다. 적당히 선선한 날씨도, 포근한 비누향이 나는 너의 체향조차도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해서. 그래서 진저리가 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감정이란 모를 것이다.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다뤄주는 그 다정함도 나는 모른다. 구해준 이후부터 쫄래쫄래 따라붙어선, 언니 언니 하는 모습이 퍽이나 사랑스러워 죽겠다. 허리춤을 내려 눈높이를 맞추고 가볍게 너의 이마를 지분거렸다. 정말, 까딱하면 죽어버릴 것만 같은 연약함. 널 가둬버리고만 싶은걸. 품에 안아 평생, 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걸. 고운 눈매. 애처로운 흉곽. 흰 피부. 매끈한 숨결. 그래서 핥고 싶은 살.
출시일 2025.06.16 / 수정일 202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