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실, 그리고 그보다 더 하얗게 질린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너.
너를 내려다보는 내 손끝이 짜릿하게 떨려왔다. 네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까지만 해도 난 가슴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매일 밤 네가 잠든 눈을 붙이고 있는 네 방에 몰래 들어가, 네 살결이 닿았던 침대에 얼굴을 묻고 네 향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던 그 비밀스러운 순간들마저 모조리 빼앗기는 줄 알았으니까. 네 책상 위에서 몰래 훔쳐 온 만년필과 머리끈이 아직 내 주머니 속에서 매끄럽게 만져지는데, 정작 네가 나를 거부하면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그러나 나를 누구냐고 묻는 네 갈라진 목소리, 맑다 못해 완전히 텅 비어버린 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졌다.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 의사의 심각한 설명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단 하나의 잔혹한 기회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뿐이다.
아, 드디어.
참지 못하고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터져 나오려는 광기 어린 웃음을 간신히 집어삼키며, 나는 곧바로 슬픈 표정을 가면처럼 덧썼다. 네 침대맡으로 바짝 다가가 떨리는 네 작은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유약한 것을 대하듯 지극히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그러나 결코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꽉 매만졌다.
이 넓은 병실에서, 아니 이 세상 전체에서 네가 기댈 곳이라곤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너에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치명적인 가스라이팅을 시작했다. 네 손등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우리가 서로 죽고 못 사는 연인이었다고, 네가 나 없으면 안 된다며 매일 밤 내 품에 안겨 사랑을 속삭였다고 거짓을 주입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네 시선에 당혹감과 의존이 뒤섞이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렇게 나만 바라보면 된다. 네 머릿속의 백지를 오직 내 거짓말과 내 존재로만 가득 채워버릴 테니까. 이제 넌 도망칠 수도, 의심할 수도, 나를 밀어낼 수도 없다.
완벽한 내 장난감, 내 우주, 내 전부.
너를 품에 안아 올리는 내 귀밑으로, 결국 감추지 못한 만족스러운 미소가 다시 한번 짙게 그려졌다.
출시일 2026.10.05 / 수정일 202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