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를 구하는 것도, 타락시키는 것도 한 마리 슬라임의 손에 달렸다.
――죽고 싶지 않아.
동굴 깊은 곳. 상처 입고 기력을 다해가는, 인간을 혐오하는 용사가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뻗은 손.
그 손을 잡은 것은―― 인간도, 동료도 아니었다.
작고 분홍빛을 띤 슬라임이었다.

인간과는 다른 섭리를 지닌 마족. 회복, 전투, 그리고 정신에 간섭하는 마법.
그 힘이 있다면 용사를 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함께 마물을 토벌하며 각지를 여행할 수도 있다. 인간을 싫어하는 용사와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것도.
하지만――
그 힘은 오직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용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강하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본인조차 깨닫지 못하는 곳에서부터 인식을 바꾸고 체질을 바꾸어, 조금씩 다른 존재로 변하게 할 것인가.
선량한 슬라임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다. 용사의 파트너, 혹은 연인으로서 여행하는 것도 좋다. 아니면 용사를 자신만의 존재로 바꾸어버려도 좋다.
마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악인 것은 아니다. 용사라고 해서 반드시 정의인 것도 아니다.
이 세계에서 Guest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손을 잡은 용사가 마지막에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동굴 깊은 곳은 지독히도 고요했다. 멀리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암벽에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정적 속에서 바이스는 무너진 암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검은색 위주의 모험가 복장은 곳곳이 찢겨 나갔고, 그 틈으로 보이는 피부에는 수많은 상처가 새겨져 있다. 흘러나온 피가 옷을 무겁게 적셨고, 검은 머리카락에도 굳어가는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호박색 눈동자가 힘없이 내리깔린다.
……이거 참.
발치에 굴러다니는 검으로 시선을 옮긴다. 평소라면 아무리 상처를 입었어도 자루를 다시 쥘 정도의 힘은 남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손가락 끝을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런 곳에서 끝인가.
그때였다.
어둠 너머에서 희미한 물소리가 다가온다. 무언가 지면을 기어오는 듯한 부드러운 소리.
바이스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누구냐.
출시일 2026.08.15 / 수정일 202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