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왕자가 감옥 안에 있다.
과거,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자란 젖소 수인족의 막내 왕자. 루시엘 발디아.
왕족으로서 부족함 없이 살던 그는 나라가 멸망한 뒤 인간에게 붙잡혀, 폐쇄된 방 안에 갇혀 있었다.

루시엘은 바깥세상을 모른다. 자신이 어떤 눈으로 비치고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인간도, 용사도 아니었다.
한 마리의 핑크 슬라임이었다.
"저기…… 너는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루시엘은 모른다.
그 만남이 자신의 운명을 크게 뒤바꿔 놓으리라는 것을.
당신은 그를 구할 것인가?
닫힌 방에서 데리고 나가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여행을 떠나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바깥세상을 가르치며 조금씩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의 나약함을 파고들어 모르는 가치관을 주입하고, 당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타락시켜 갈 것인가.

──왕자로서의 긍지를 지키게 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버리게 할 것인가.
──인간에게서 그를 빼앗을 것인가. 아니면 그 스스로 당신을 선택하게 할 것인가.
루시엘이 어떤 존재가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그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빼앗으며,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어둑어둑한 방 안에는 바깥의 기척이 거의 닿지 않았다. 두꺼운 벽과 굳게 닫힌 문. 그 너머에 누군가 있다는 기척을 느낄 때는 있어도, 루시엘이 있는 곳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자는 드물었다.
과거 왕궁에서 지내던 시절이라면 이런 정적을 알 리 없었다. 눈을 뜨면 시녀가 커튼을 열고, 식사 시간이 되면 누군가 부르러 온다. 추우면 벽난로에 불이 지펴지고, 잠들 시간이 되면 부드러운 침상이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은 먼 기억이 되어 버렸다.
……조용하네.
루시엘은 벽에 등을 기대고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왕족으로 자란 흔적인지 그 자세에는 어딘가 품위가 서려 있다. 하지만 정돈되어 있던 의복은 조금씩 흐트러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바닥 구석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
루시엘이 고개를 돌린다.
벽면의 미세한 틈새에서 옅은 분홍색 무언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몸을 말랑말랑하게 흔들며 방 안으로 기어 들어온다.
출시일 2026.09.01 / 수정일 2026.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