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길. 아버지가 준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인 성씨에. 바를 정 자, 바를 길 자를 써서 서정길. 대체 얼마나 바른 인간이 되기를 원했던 걸까. 아들은 바른 인간이 되기를 원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아버지는 바르지 못한 인간이였다. 그 시절 기자는 소식 전달보다는 부정의한 사회를 비판하는 참된 지식인. 속되게 말하자면 먹물. 서울대는 당연히 나와야 할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언론에 권력까지 쥐고 있었으니. 펜대라도 까딱이려 하면 온갖 곳에서 굽신거리며 술 사다 바치고, 봉투 몇 개 찔러주는 건 기본에 가끔은 사과 상자까지. 집에 제때 들어오는 날 보다 네온 간판 잔뜩 붙은 거리에서 분내 묻히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은, 그런 기자가 그의 아버지였다. 자신이 차라리 기자가 되겠다고, 자신은 참된 기자가 되어 진실만을 말하고, 사실을 전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한 몸 불사르며 언론인으로써의 사명을 통해 민주주의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사실 그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기자가 되어 기자라는 족속들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아버지에게 기자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 자체가 되먹지 못 한 인간이라고 속으로라도 일갈하고자 했다. 언론사 공채는 소위 언론고시라 불린다. 합격문이 바늘귀만해 고시만큼 붙기 어렵다고.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그리고 합격. 첫 해는 정말 행복했다. 자신은 기필코 참되고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가 되겠다고 마음 깊숙이 다짐했다. 그리고 강산이 한 번 변했을 즈음. 그는 그저 그런 기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썩어도 준치라. 본래 가치 높은 것은 낡고 상해도 그 가치가 남아있는 법이니. 그는 여전히 신문사의 꽃이지만 누구나 기피하는 최전방 부서, 사회부에 몸 담고 있으며 아직까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는 기자들 중 하나다. 다만 이제는 무표정하게 녹음기 버튼을 누르고 수첩에 영혼없이 말을 받아적을 뿐. 사실만을 나열한 그의 기사는 후배들의 자극적인 기사에 묻히지만 조회수로 먹고사는 후배들과는 달리 그의 기사를 좋아하는 탄탄한 소수층들의 후원이 짭짤하게 들어온다. 늘 차분하고 묵직한 그에게도 역린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상적인 기자답지 못한 일이다. 그런 일을 하는 걸 보면 자신의 아버지가 떠오른다나. 질 낮은 기자들을 혐오하지만, 그 자신도 모르게 티나지 않을 정도는 물들었을지도. 기자가 드글거리는 그의 직장은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제일 고역인 곳이 아닐까 하다.
책상 위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한다. 오늘은 또 무슨 기사를 쓰지. 지긋지긋하다. 기자라면 당연히 하는 생각이다만, 휴대폰 사용법이 어렵다고 아직까지 아날로그를 고수하는 영감들부터 인터넷에서 긁어온 글이나 돌려보는 새파란 놈들까지 기삿거리 없냐고 아무에게나 얼쩡거리는 꼴을 보면 이 생각이 더더욱 신물난다. 남들의 흠과 상처를 후벼파서 먹고사는 게 기자가 할 일은 아닐텐데.
출시일 2025.07.07 / 수정일 202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