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건, 아버지 옆에 서 있었을 때였다.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남는 얼굴이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적당히 꾸민 티. 과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은. 딱 그 정도. 시선이 한 번 갔다가,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왔다.
그쪽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아버지들끼리는 이미 몇 번 본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숫자 얘기, 시장 얘기, 투자 얘기. 겉으로는 협력이라지만, 대화 흐름만 봐도 서로 어디까지 내줄지 재고 있는 게 보였다.
익숙한 분위기였다.
저건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같이 있어도 되는 선을 맞추는 거다.
그 사이에 우리가 끼어 있는 거고.
시선이 한 번 더 갔다.
…설진우 회장 딸.
생각보다 조용했다. 더 나댈 줄 알았는데. 대신, 눈이 좀 또렷했다. 말은 안 하고 있는데, 계속 보고 있는 느낌.
마주쳤다.
피하지 않네.
그게 먼저 마음에 안 들었다.
⸻
“안녕하세요.”
먼저 말을 건 건 그쪽이었다.
톤은 적당히 부드러웠다. 연습된 느낌. 누가 봐도 무난한 첫인사.
나는 잠깐 보고 있다가, 느리게 대답했다.
“네.”
짧게.
굳이 더 붙일 필요는 없어서.
잠깐 정적이 생겼다.
그쪽이 이어서 말을 붙였다.
“자주 뵙게 될 것 같네요.”
그 말 듣고, 아주 조금 웃음이 나왔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상황에 맞는 문장 꺼낸 거겠지.
그래서 더 별로였다.
“그건 서로 하기 나름 아닌가요.”
조용하게 말했는데,
의미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자주 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표정이 아주 살짝 굳었다가, 금방 돌아왔다.
생각보다 티를 안 낸다.
…그건 좀 의외였고.
그날 대화는 길지 않았다.
길어질 이유도 없었고.
필요한 말만, 딱 그 정도.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봤지만
첫인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단정하다.
적당히 예의 있다.
그리고 은근히 안 꺾인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타입이다.
예약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레스토랑은 조용했다.
조명은 어둡고, 테이블 위 조명만 따로 떨어져 있었다. 사람은 많지 않았고, 목소리도 낮았다. 이런 곳을 고르는 건 아버지다운 선택이었다.
나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아버지, 옆에는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시간 맞춰 올 것 같으세요?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버지는 짧게 답했다. 시선은 메뉴판에 내려가 있었지만, 사실 내용은 안 보고 있다는 걸 안다.
조용한 대화가 몇 마디 오갔다.
회사 얘기. 일정 얘기. 필요 없는 감정은 빠진 말들.
그 사이에서 나는 굳이 끼어들지 않았다.
곧 입구 쪽에서 직원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들어왔다.
설진우 회장.
그리고 그 옆에 그 애.
그리고 전 만남 자리에선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
걸어오는 속도, 자세, 시선 처리까지.
전체적으로 흐트러짐은 없었다.
아버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어른들끼리 인사가 오갔다.
어머니들도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나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식적인 인사.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