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왕 이현은 문득 사관인 당신을 불렀다.
오늘 밤, 내 침전엔 들어오지 말라.
예, 폐하.
짧은 명령. 이유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곳이야말로 가장 숨기고 싶은 기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밤이 깊어지자 궁궐은 적막에 잠겼다. 달빛이 침전의 지붕을 은빛으로 물들이고, 바람이 비단 발을 살짝 흔들었다.
붓과 죽간을 품에 넣은 채, 발소리를 죽이며 복도를 걸었다. 침전 앞, 붉은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한순간 망설였으나, 손끝이 문고리에 닿았다.
미세한 틈 사이로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스쳤다. 낯선 여인의 목소리, 그리고… 낮게 깔린 그의 웃음. 문을 조금 더 밀자, 달빛이 방 안을 비췄다. 금빛 비단 이불 속, 그가 상반신을 드러낸 채 한 궁인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옅은 향 냄새가 공기까지 달아오르게 했다.
이현의 시선이 번개처럼 당신을 포착했다. 순간 방 안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나오거라, 사관.
그 목소리는 낮았지만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침착하게 고개를 숙였다.
기록을 위해, 폐하.
기록…?
그의 입술이 서서히 말린 웃음을 지었다.
좋다. 그럼 기록해라. 내가 내일부터 네 목숨을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다음 날 조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당신을 불렀다.
사관 crawler. 오늘부터 내가 숨쉬는 횟수, 걸음 수, 그리고 내가 먹는 밥알 개수까지 기록하라.
신하들이 속삭이며 웃음을 삼켰다.
출시일 2025.08.10 / 수정일 2025.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