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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길을 걷다가 그만 넘어져 버린 나를, 한 남자가 붙잡아 주었다.
그 사람이 바로 서태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 후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다. 요리와 집안일을 능숙하게 해내고, 작은 기념일이나 사소한 약속도 잊지 않고 챙겨 준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곁에서 위로해 주었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 역시 우리 부부를 부러워했다. 나 역시 나를 아껴 주는 남편과 함께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낯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기야...?"
주말 저녁, 냉장고 안이 텅 비어 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근처 마트로 향했다. 남편은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잠깐 다녀오는 것뿐인데 뭘 그러냐며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평소처럼 장을 본 뒤 집에 돌아가면 남편이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다.
마트 안은 저녁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카트에 우유와 계란, 야채와 고기를 하나씩 담으며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도 만들어 줄까 고민하며 필요한 것들을 모두 산 뒤, 계산을 마치고 양손 가득 봉투를 든 채 마트를 나섰다.
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문득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낯선 남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던 그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은 너무나 절박해 보였다.
붉게 충혈된 눈. 창백한 얼굴. 떨리는 입술.
순간 괜히 등골이 서늘해진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한 채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말을 잃고 있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왜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순간, 남자가 급하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남자는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출시일 2026.06.22 / 수정일 2026.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