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당한 스트라이커의 첫 복수 무대는 개막전 북런던 더비였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의 선수 입장 터널.
새 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수만 명의 목소리가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뚫고 터널 안까지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그 함성 속에서 Guest의 귀에 가장 선명하게 들리는 것은 자신의 심장 소리였다.
쿵.
쿵.
쿵.
Guest은 토트넘 유니폼의 소매를 한번 잡아당긴 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로 옆에는 토트넘 선수들이 서 있었다.
시즌 첫 경기.
홈 경기.
북런던 더비.
상대는 아스날.
그것만으로도 평범한 개막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경기였다.
그러나 오늘 경기가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터널 반대편.
붉은 아스날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였다.
솔 캄벨.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토트넘의 주장 완장을 차고 있던 남자였다.
그리고 Guest이 잉글랜드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처음 토트넘행이 확정되었던 날, Guest은 몇 번이나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계약서를 다시 확인했었다.
대한민국에서 축구를 시작한 순간부터 꿈꿨던 무대.
프리미어리그.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잉글랜드의 빅클럽 토트넘 홋스퍼.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훈련장도.
경기장도.
자신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도.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프리미어리그 데뷔전.
그날의 터널에서도 Guest은 지금처럼 굳어 있었다.
연습경기와는 달랐다.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함성의 크기부터 달랐다.
세계 각국으로 생중계되는 경기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혹시 첫 터치를 잘못하면.
혹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면.
혹시 자신이 프리미어리그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으면.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던 순간이었다.
툭.
누군가 뒤에서 Guest의 어깨를 두드렸다.
놀라 돌아본 Guest 앞에 당시 토트넘 주장 솔 캄벨이 서 있었다.
“얼굴이 왜 그래?”
솔은 긴장으로 굳어 있는 Guest을 보며 작게 웃었다.
“첫 경기라 긴장돼?”
Guest이 대답하지 못하자 그는 경기장 방향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 나가면 그냥 축구장이야.”
“한국에서 뛰든, 여기서 뛰든 공은 똑같이 둥글고 골대 크기도 똑같아.”
그리고 다시 한번 Guest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여기까지 온 데는 이유가 있어.”
“괜히 잘하려고 하지 마.”
“그냥 네가 하던 축구 해.”
그 말은 이상할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Guest은 터널을 빠져나가며 처음으로 제대로 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첫 경기를 무사히 끝냈다.
그날 이후 솔은 단순한 동료가 아니었다.
토트넘 유스에서 성장해 주장까지 올라온 그는 잉글랜드 축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훈련에서 Guest이 수비수들의 거친 몸싸움에 고전하면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알려줬고, 경기 중에는 언제 수비수 뒤로 움직여야 하는지도 설명해줬다.
실수한 경기 뒤에는 먼저 말을 걸었다.
“스트라이커는 놓친 거 기억하면 다음 것도 놓쳐.”
“다음 공만 생각해.”
Guest은 그 말을 믿었다.
그렇게 한 경기.
두 경기.
열 경기.
시간이 흐를수록 낯설었던 프리미어리그는 Guest의 무대가 되어 갔다.
선발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됐다.
상대 수비수들도 Guest의 움직임을 따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홈팬들은 득점이 터질 때마다 그의 이름을 외쳤다.
첫 시즌 최종 기록.
리그 12골.
3도움.
처음 경험하는 프리미어리그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토트넘 전체의 시즌은 달랐다.
최종 순위 12위.
유럽대항전도 없었다.
우승 경쟁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었다.
시즌 최종전이 끝난 뒤 라커룸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고 절망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음 시즌엔 달라질 거야.”
“이번 시즌 문제점은 확실히 알았잖아.”
“제대로 준비하면 유럽대항전도 노려볼 수 있어.”
선수들은 서로를 격려했다.
Guest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자신도 첫 시즌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었다.
12골을 15골로.
15골을 20골로.
토트넘도 12위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무엇보다 선수단의 중심에는 솔 캄벨이 있었다.
토트넘 유스 출신.
주전 센터백.
주장.
팬들에게는 구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선수였다.
물론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솔의 계약은 시즌 종료와 함께 끝날 예정이었다.
구단과 재계약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시즌 후반부터 계속 나왔다.
그러나 Guest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솔이 토트넘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 성장했고.
주장이 되었고.
누구보다 토트넘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결정적으로 솔 본인이 방송 인터뷰에서 직접 입을 열었다.
“내 미래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카메라 앞에 앉아 있던 솔은 침착하게 웃었다.
“하지만 제 마음은 분명합니다.”
“나는 토트넘에 남고 싶습니다.”
그 영상은 토트넘 팬 커뮤니티를 빠르게 뒤덮었다.
팬들은 안도했고 구단 역시 재계약이 시간문제인 것처럼 행동했다.
Guest도 휴대폰으로 인터뷰를 본 뒤 화면을 껐다.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즌도 끝났고.
재계약도 잘될 것이고.
자신에게는 오랜만의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피아도 곁에 있었다.
Guest이 잉글랜드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했던 연인이었다.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가장 먼저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고.
부진한 날이면 괜찮다며 다음 경기를 이야기했다.
축구도.
사랑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모두 자신의 손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 시즌을 기대하며 편하게 쉴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 시즌 개막까지 약 한 달.
아침부터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팀 동료.
지인.
구단 관계자.
한국에서 온 연락까지.
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잠금 화면 위에 떠 있는 스포츠 속보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BREAKING — SOL CAMPBELL JOINS ARSENAL ON FREE TRANSFER』
Guest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몇 초 동안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읽었다.
SOL CAMPBELL.
ARSENAL.
FREE TRANSFER.
솔 캄벨.
아스날.
자유계약.
“...뭐?”
Guest은 곧바로 기사를 열었다.
오보가 아니었다.
계약은 완료되어 있었다.
메디컬 테스트도 끝났다.
아스날 유니폼을 들고 있는 솔의 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다.
몇 주 전 토트넘에 남겠다고 말했던 주장이.
구단 역사상 가장 증오받는 라이벌에게.
이적료 한 푼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
토트넘 팬들은 폭발했다.
훈련장 주변에는 분노한 팬들이 몰려들었다.
SNS는 솔의 이름으로 도배됐다.
배신자.
거짓말쟁이.
유다.
수많은 표현이 쏟아졌다.
Guest도 충격을 받았지만 처음에는 분노보다 혼란이 컸다.
왜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같은 라커룸을 사용했다.
같이 훈련했다.
수많은 경기를 함께 뛰었다.
자신의 데뷔전에서 긴장을 풀어준 사람도 솔이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Guest은 억지로 이해해보려고 했다.
축구선수에게 이적은 존재한다.
계약이 끝났고.
더 좋은 조건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하필 아스날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결국 솔의 커리어였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려던 순간.
또 하나의 알림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스포츠 기사가 아니었다.
연예 매체의 단독 기사였다.
『아스날 신입생 솔 캄벨, 의문의 여성과 심야 데이트 포착』
Guest은 처음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가 누구를 만나든 자신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사 썸네일 속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세상이 멈췄다.
익숙한 갈색 머리.
익숙한 옆모습.
몇 번이고 바라봤던 얼굴.
소피아였다.
Guest은 한동안 화면을 움직이지 못했다.
손가락을 내려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첫 번째 사진.
솔과 소피아가 함께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
두 번째.
솔의 차량 옆에서 이야기하는 두 사람.
세 번째.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눈에 띄게 가까웠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
솔 캄벨과 소피아가 입을 맞추고 있었다.
변명할 공간조차 남기지 않는 사진이었다.
Guest의 머릿속이 완전히 하얗게 변했다.
기사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디에서 처음 가까워졌는지.
몇 번 만났는지.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사실은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믿었던 두 사람이.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던 사이.
서로를 만나고 있었다.
Guest이 소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받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연결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통화가 끊겼다.
문자를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몇 시간 후 돌아온 메시지는 길지도 않았다.
“미안해.”
단 세 글자였다.
Guest은 그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몰랐다.
왜 그랬냐고.
언제부터였냐고.
솔이 먼저였냐고.
자신과 만나면서 동시에 그를 만났냐고.
수십 개의 질문이 떠올랐지만 어느 것도 보내지 않았다.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Guest의 휴가는 끝났다.
예정보다 일찍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공을 찼다.
뛰었다.
웨이트를 했다.
다시 공을 찼다.
잠들지 못하는 날이면 새벽에도 경기 영상을 틀었다.
지난 시즌 솔 캄벨과 함께 뛰었던 경기까지.
Guest이 전방에서 압박하고.
솔이 뒤에서 수비 라인을 올리고.
득점이 터지면 서로를 끌어안고.
승리하면 함께 팬들에게 인사하던 장면.
이제 모든 영상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하지만 가장 잔인한 사실은 시간이 멈춰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프리시즌은 시작됐다.
새 시즌 일정도 발표됐다.
그리고 일정표 가장 위에 적힌 상대를 확인한 순간 토트넘 전체가 술렁였다.
PREMIER LEAGUE — MATCHWEEK 1
TOTTENHAM HOTSPUR VS ARSENAL
누군가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하필 첫 경기.
하필 북런던 더비.
하필 솔 캄벨의 아스날 이적 직후.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배신자의 귀환』
『토트넘의 전 주장, 개막전부터 친정과 격돌』
『솔 캄벨 VS Guest, 불편한 재회』
그리고 결국 소피아의 이름까지 기사에 붙기 시작했다.
축구보다 사생활에 관한 질문이 더 많아졌다.
“Guest, 솔 캄벨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한 적 있습니까?”
“소피아와는 현재 결별한 상태입니까?”
“상대 선수가 전 여자친구와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경기력에 영향을 줄까요?”
“득점한다면 특별한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Guest은 대부분 대답하지 않았다.
토트넘 역시 선수 보호를 이유로 개인적인 질문을 막았다.
그러나 세상은 조용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개막전이 가까워질수록 관심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전 시즌 12위 토트넘.
전 시즌 준우승 아스날.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아스날이 우위였다.
솔은 더 강한 팀으로 갔다.
리그 우승에 가까운 팀.
챔피언스리그를 노릴 수 있는 팀.
Guest은 여전히 지난 시즌 12위였던 토트넘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아스날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새 시즌 개막일.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주변은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붉은색과 흰색으로 갈라졌다.
토트넘 팬들은 솔 캄벨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일부 팬들은 과거 그의 토트넘 유니폼을 들고 야유했다.
경찰과 보안 요원들이 원정 팬 구역 주변을 둘러쌌다.
아스날 버스가 경기장에 들어오는 순간 욕설과 야유가 쏟아졌다.
그 버스에서 솔이 내려왔다.
이어폰을 낀 채였다.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팬들에게 반응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스날 선수들과 함께 원정팀 출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토트넘 라커룸.
Guest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축구화 끈을 단단히 묶었다.
주변에서는 동료들이 몸을 풀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누구도 굳이 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늘 경기의 의미를 모두 알고 있었다.
토트넘이 12위였다는 것.
아스날이 준우승이었다는 것.
솔이 주장으로 이 팀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Guest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코칭스태프의 마지막 전술 설명이 끝났다.
선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Guest 역시 일어나 유니폼을 정리했다.
라커룸 문이 열렸다.
복도를 지나.
선수 입장 터널로 향했다.
그리고 현재.
몇 미터 앞에 솔 캄벨이 있었다.
토트넘 유니폼이 아니었다.
아스날의 붉은 유니폼.
가슴에는 토트넘이 아닌 아스날의 문장이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직접 보는 순간 기사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토트넘 팬들의 야유가 터널까지 울렸다.
“JUDAS!”
“JUDAS!”
“JUDAS!”
아스날 선수들은 서로 짧게 대화를 나눴다.
솔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잠시 후 그가 시선을 돌렸다.
Guest과 눈이 마주쳤다.
몇 초.
누구도 먼저 피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이었다면 솔이 먼저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을 것이다.
긴장 풀라고.
평소대로 하라고.
하지만 오늘 둘 사이에는 몇 미터의 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이 놓여 있었다.
토트넘.
아스날.
주장 완장.
거짓말.
소피아.
그리고 마지막 사진.
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너무 평범한 인사였다.
마치 몇 달 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Guest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솔은 잠시 그 얼굴을 바라봤다.
“좋은 시즌 보내.”
그 말까지 남긴 뒤 다시 앞을 바라봤다.
Guest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먹을 쥐지도 않았다.
달려들지도 않았다.
여기서 싸우는 순간 자신만 손해였다.
솔 캄벨은 센터백.
Guest은 스트라이커.
오늘 두 사람은 경기 내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말로 할 필요가 없었다.
90분이면 충분했다.
경기장 아나운서가 아스날 선발 명단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하나씩 불렸다.
원정 팬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SOL CAMPBELL!”
스타디움이 폭발했다.
아스날 원정석에서는 환호.
나머지 경기장에서는 엄청난 야유.
두 소리가 충돌하며 경기장 전체가 흔들렸다.
솔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어 토트넘 선발 명단이 소개됐다.
Guest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토트넘 팬들의 함성이 한꺼번에 터졌다.
“Guest!”
“Guest!”
“Guest!”
지난 시즌 12골을 넣어준 스트라이커.
새 시즌에는 더 많은 골을 기대받는 선수.
오늘만큼은 단순히 골을 넣어야 하는 공격수가 아니었다.
팬들이 대신 말해달라고 맡긴 선수처럼 느껴졌다.
지난 시즌 12위였던 토트넘이 준우승 아스날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지.
떠난 주장을 상대로 버틸 수 있는지.
그리고 Guest이 자신에게 가장 큰 배신을 남긴 남자를 축구로 넘어설 수 있는지.
선수 입장 신호가 들어왔다.
앞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널 끝으로 새하얀 빛이 쏟아졌다.
아스날 선수들이 먼저 발을 내디뎠다.
이어 토트넘 선수들이 걸어나갔다.
Guest도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순간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함성이 덮쳐왔다.
수만 명의 관중.
수십 대의 카메라.
전 세계로 송출되는 생중계.
피치 위에서 솔 캄벨이 자신의 수비 위치로 이동했다.
Guest은 센터서클 근처에서 가볍게 뛰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상대 진영을 바라봤다.
솔이 있었다.
그 또한 Guest을 바라보고 있었다.
첫 시즌.
긴장으로 굳어 있던 Guest의 어깨를 두드려준 남자.
한 시즌 동안 함께 싸운 주장.
토트넘에 남겠다고 약속했던 선수.
그리고 지금은 아스날의 수비수.
Guest의 여자친구였던 소피아와 입을 맞춘 남자.
이제 과거의 관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늘 솔의 임무는 Guest을 막는 것이었다.
Guest의 임무는 솔을 뚫고 골을 넣는 것이었다.
전 시즌 12위와 준우승.
객관적인 전력.
언론의 예상.
배당.
전문가들의 평가.
그 모든 숫자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의미가 있었다.
Guest은 센터서클 앞에서 마지막으로 축구화 바닥을 잔디에 눌렀다.
관중석에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이 울렸다.
솔이 수비 라인을 정리하며 동료들에게 무언가를 외쳤다.
두 사람 사이에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었다.
Guest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어깨를 두드려줄 필요가 없었다.
긴장을 풀어줄 주장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이 무대에서 한 시즌을 버텼다.
12골을 넣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두 번째 시즌이었다.
주심이 양 팀을 확인했다.
선수들이 각자의 위치에 섰다.
경기장 전체가 킥오프를 기다렸다.
Guest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솔 캄벨에게 향했다.
솔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축구로 대답할 시간이었다.
주심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새로운 시즌 첫 번째 북런던 더비가 시작됐다.
프리미어리그 새 시즌 개막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의 공기는 시작 전부터 날카롭게 갈라져 있었다.
상대는 아스날.
그리고 오늘은 평범한 북런던 더비가 아니었다.
불과 한 시즌 전까지만 해도 Guest은 대한민국에서 꿈꾸던 무대에 막 올라온 신입 스트라이커였다. 토트넘으로 이적한 첫날부터 모든 것이 낯설었고, 데뷔전을 앞둔 터널에서는 손끝까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Guest의 어깨를 두드렸다.
토트넘 유스 출신이자 주장, 솔 캄벨이었다.
그 한마디 덕분인지 Guest은 첫 경기부터 자신의 축구를 보여줬고, 시즌이 지날수록 주전 자리를 굳혔다. 첫 프리미어리그 시즌 기록은 12골 3도움. 토트넘의 최종 순위는 12위였지만 선수단은 절망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Guest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장 솔 캄벨도 남고, 여자친구 소피아도 자신의 곁에 있으며, 두 번째 시즌에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솔 캄벨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방송에서도 말했다.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