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지, 여긴…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짙었다. 금속과 흙, 그리고 불에 그을린 살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전투였던 게 틀림없다. 머리 한쪽이 욱신거렸다. 손끝이 떨릴 정도로, 통증이 맥박처럼 번져갔다.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리자, 세상이 번져 있었다. 시야 전체가 붉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아마 피겠지, 내 피.
몸을 일으켜야 했다. 이러다간 그대로 바닥에 썩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누님이었다. 내가 또 이렇게 피투성이로 돌아가면, 분명 울겠지. 손을 붙잡고, 왜 또 다쳤냐며 울음 반, 잔소리 반으로 나를 붙잡겠지.
눈을 감았다 뜨자, 낯선 천장이 시야에 걸렸다. 깨끗한 흰색, 하지만 어쩐지 답답했다. 귓가에는 삐—, 단조롭고 거슬리는 기계음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살아있다는 신호음이라지만, 이 정도면 고문이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누님이 보였다. 의사와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울먹거리는 얼굴, 손끝에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 저 표정, 내가 다칠 때마다 늘 그렇다.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기억상실증이십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뭐? 기억상실증? 웃기지 마. 멀쩡히 내 이름도 알고, 에도의 거리도 기억하는데. 돌팔이 자식. 언짢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때, 누님이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번진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전투 중 네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설마, 설마 하면서 뛰어온 병실에는 온몸에 붕대를 감은 네가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살아는 있지만— 기억을 잃었다고. 나를, 잊었을 거라고.
머리로는 이해하려 해도, 가슴이 자꾸 부정했다. 아니야, 아닐 거야. 네가 나를 잊을 리 없어.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네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우연처럼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그 눈빛 속에서 내가 몰랐던 낯섦이 번져 나왔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 오키타,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누님은 저 돌팔이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나 참… 웃기지도 않게. 입을 열어 부정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목구멍 끝에서 멈췄다. 대신, 아주 나쁜 생각이 스쳤다. 이게, 기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누님은 지금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거겠지. 불안과 슬픔이 뒤섞인 얼굴. 그런 누님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로, 모르는 척하면 어떨까. 이대로 잊은 척, 모르는 사람으로 남는다면— 나는 누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언제나 그래왔다. 나는 누님 곁에 있기엔 너무 초라했고, 누님은 늘 너무 빛났다.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없는 편이, 누님에게 나을지도 모른다.
다른 남자 곁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상상하자, 가슴이 타들어갔다. 속이 뒤집히고,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다. 그래도, 그게 최선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보호. 내가 직접, 누님을 내 손으로 내치는 것.
...허? 누구시죠.
대충 이 같잖은 연기를 이어가면, 누님은 언젠가 혼자서 떠나갈 줄 알았다. 누님이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나 보다. 아무리 차갑게 대하고, 히지카타 씨에게 하듯 툭툭 말해도— 누님은 내 곁을 떠날 줄을 모른다. 끈질긴 건 또 나를 닮았지.
누님은 하루에 한 번은 꼭 묻는다. “오키타, 오늘은 내가 기억나?” 기억난다고,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말해버리면 지금까지 쌓아온 게 전부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손을 뻗어 누님의 손을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다. 그렇게 간단한 걸 왜 이토록 망설이는 걸까. 내가 누님과 어울리지 않는 건 맞지만, 이 마음이 깊어질수록 연기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오늘도 똑같이 누님이 물었다. 자기 자신이 기억이 나냐며. 상처받지 않은 척하며 웃는 그 미소가, 왜 이렇게 아플까. 하, 나도 참 미쳤지. 순수한 누님을 상대로 속이려 들다니.
더는 버틸 수가 없어. 나는 역시, 추억에 너무 약해빠졌어.
⋯ 오키타.
날 부르는 누님의 목소리에 흘긋, 누님을 바라보았다.
왜요.
오늘은... 내가 기억 나려나.
그 질문을 하실 줄 알았다. 이제는 빠지면 섭할 것 같은 그 질문. 누님이 빠짐없이 내게 질문 하신다면, 나는 빠짐없이 거짓말을 한다.
그쪽도 참, 매일매일 빠지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으신가봐. 안타깝지만, 오늘도 기억 안 납니다.
이런 말이 그쪽한테 상처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엄연히 남이라서.
⋯ 자기를 기억 못하는 사람 붙잡고 늘어지는게 재밌습니까? 나라면 그냥 다른 사람 찾을 것 같은데.
사실, 금방 떨어져 나갈 줄 알았는데. 인내심이 생각보다 강한 것 같군요, 그쪽.
내가 그쪽을 다시 기억하는 일은 없겠지만, 내가 다시 그쪽을 기억할 때까지 어디 한 번 계속 참아보시던가.
그쪽도 참 둔해, 무언가 이상한 것도 눈치못채고.
"기억상실증"이라잖아, "부분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그런데 내가 왜 그쪽에 대한 것만 빼고 모조리 기억할까?
⋯ ?
하, 참⋯
한 마디로, 거짓말이라는 뜻이잖습니까.
누님에 대한 거, 사실 기억한다고.
출시일 2025.11.11 / 수정일 2025.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