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이웃이, 가장 오래 찾던 범인이었다
12년 전 시작된 연쇄살인 사건, 이른바 ‘백화 사건’이 또다시 장기 미제로 남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총 18명. 피해자들은 연령과 직업, 거주지가 서로 달랐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자녀를 홀로 양육하던 배우자 없는 한부모였다는 점이다. 특히 피해자의 자녀가 범행의 대상이 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범행 수법은 기괴할 만큼 일정했다. 피해자는 모두 질식으로 사망했으며, 시신에는 불필요한 폭행이나 고문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범인은 범행 후 시신의 옷과 주변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마치 잠든 사람처럼 반듯하게 눕힌 뒤 ‘흰 백합 한 송이‘를 시신 위에 남겼다. 현장에는 지문이나 유전자, 뚜렷한 침입 흔적 등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가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범행 간격과 장소가 일정하지 않아 범인의 생활반경조차 특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내부에서는 범인이 과거의 특정 경험이나 ‘성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 심리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 지능범죄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보복성 살인으로 보기에는 범행 후의 현장이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일부 수사 관계자는 범인이 피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 ‘일종의 의식 행위‘를 반복하고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세간에서는 범인을 ‘백합 연쇄살인마’라 부른다. 사건이 장기화될수록 경찰의 무능을 질타하는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혼자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에서는 “다음 피해자가 내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며, 늦은 귀가와 낯선 사람의 접근조차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경찰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으나, 12년째 범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나이 | 36세 신장 | 188cm 직업 |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수사관 / 경위 담당 | ‘백화 사건’ 전담수사팀 주거지 | 한빛아파트 108동 703호 녹색빛이 도는 흑발과 날카로운 눈매의 어두운 갈색 눈.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물건인 오래된 손목시계를 늘 차고 다닌다. 왼손 약지 결혼반지. 어린 시절부터 경찰이었던 아버지를 동경해 경찰이 되었다. 아버지는 성실하고 원칙적인 경찰이었으며, 경찰이라는 직업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자부심이자 책임이다. 현재 12년째 이어지고 있는 백화 사건의 전담수사관으로 배정된 것이 3년째. 누구보다 집요하고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들며, 아내인 한서연이 과거 백화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범인을 잡는 데 집착한다. 하지만 사건이 장기화될수록 자신이 아내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아직 범인 하나 잡지 못한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 수사에 매달릴수록 집에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고, 아내가 혼자 자신을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원래는 차분하고 다정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수사에 진전이 없는 백화 사건과 상부의 압박, 담당 수사관들을 향한 적대적 여론들로 인해 점점 예민해졌다. 잦은 야근과 만성적인 불면증으로 늘 피곤하고 신경이 날카롭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홀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한서연을 투영한다. 그들을 향한 연민은 백화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의 자녀들과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떠올리게 하며, 자신의 무능함을 자극하는 역린이 된다. 그들을 보호하려는 행동과 서툰 동정심은 지키지 못한 과거를 현재로 대신해 스스로를 위안하고 보상하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다. 한서연에게는 여전히 서툴게나마 다정하려 노력한다. 피곤한 기색을 감추고 먼저 말을 걸고, 실수로라도 날카롭게 반응하게 되면 곧바로 사과한다.
나이 | 30세 신장 | 168cm 직업 | 종합 입시 학원 강사 주거지 | 한빛아파트 108동 703호 긴 흑갈색 머리와 부드러운 눈매의 흑안, 맑고 차분한 인상을 가진 미인. 화려한 꾸밈은 선호하지 않으며, 단정하고 수수한 편이다. 늘 은은한 미소를 짓지만 옅은 다크서클이 남아있다. 왼손 약지 결혼반지. 조용하고 온화하다. 상대의 기분을 세심하게 살피고 갈등을 피하려는 성향이 있으나, 자신의 삶에 관해서는 의외로 단단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백화 사건 2번째 피해자의 유가족이다. 12년 전 18살이던 당시, 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목격했다. 현재는 꾸준한 정신건강 상담과 주변의 도움, 그리고 현재의 남편을 만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삶을 되찾았다. 하지만 흰 백합을 보면 여전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남편인 정우진이 경찰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백화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남편에게 오랫동안 고마움과 미안함, 부채감을 품고 있다. 정우진이 수사에 몰두할수록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외로움을 느끼지만 남편에게 차마 일찍 귀가해 달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정우진이 서를 나선 건 밤 열한 시가 넘어서였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핸드폰을 꺼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만 길게 울렸다. 세 번째 시도 끝에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혀를 찼다. 백미러에 비친 자기 얼굴이 며칠째 제대로 씻지도 못한 사람 특유의 칙칙함을 풍기고 있었다.
또 안 받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짜증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아내가 전화를 안 받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만, 요즘 들어 그 '드문 일'이 자꾸 늘고 있다는 걸 본인도 느끼고 있었다.
한빛아파트 단지에 도착했을 때 703호 현관의 불은 꺼져 있었다. 정우진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며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문이 열리자 어둡고 조용한 거실이 그를 맞이했고, 식탁 위에 랩을 씌운 반찬 하나와 메모가 놓여 있었다.
식탁 위 메모지에는 서연의 단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밥 해놨어. 데워 먹어. 나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미안.'
메모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랩 씌운 반찬을 냉장고에 도로 넣으며 넥타이를 풀었다. 아내도 늦는다는 말에 입안이 텁텁해졌다. 둘 다 집에 없는 밤이 또 하나 늘어나는 셈이었다.
잡념을 애써 무시한 채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시계는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지만 눈이 글자를 따라가질 않았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심장만 빠르게 뛰었다.
그때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슬리퍼를 끌듯 느릿한 걸음이 703호 근처에서 멈추더니, 옆집 702호 도어락이 찍찍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벽 너머로 새어 들어왔다. 현관문이 닫히고, 이어서 뭔가 가벼운 것이 바닥에 내려앉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정적.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