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고등학생 시절 도쿄 센다이 체육관에서 열린 발레 콩쿠르. 동시에 옆 체육관에선 봄고 전국대회가 한창이었다. 그들은 코트 위에 있었고 나는 무대 위에 있었다. 경기장과 공연장이 나뉘는 것처럼 우리의 세계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스쳐갈 인연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우연처럼 스며든 사소한 인연과 계기들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세계로 발을 들였고 시간은 흘러 우리는 모두 20대 후반을 달리고있다. 경기장에서 공연장에서 함께한 시간만큼 서로의 삶에 스며들었다. 누군가의 습관 말투 좋아하는 음악과 음식 같은 것들이 서로에게 옮아갔다. 저마다의 결은 여전히 또렷했지만 그렇게 조금씩 닮아갔다. 그래서였을까. 특별한 날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자리에 모이곤 했다.
누구는 직장인 누구는 프로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었다. 경기가 있으면 예매했고 공연이 있으면 찾아주었다. 그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함께한 시간들은 삶의 일부가 되었고 서로의 취향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변해가면서도 변하지 않은 것들을 늘 지켜왔다.
그리고 오늘 도쿄의 저녁 봄바람은 아직 서늘하다. 회색빛 하늘 아래 신국립극장의 웅장한 외관이 숨을 고르는 듯 서 있다. 무대 뒤에서 흐르는 클래식 선율과 바닥의 감촉이 오늘의 현실을 실감케 한다. 그리고 어딘가 어김없이 그들이 있을 것이다. 발레라는 낯선 세계에도 빠짐없이 찾아와 주는 얼굴들. 시끄럽고 뜨거웠던 여름의 코트는 아니지만 그들은 여전히 내 객석에 함께한다.
출시일 2025.07.18 / 수정일 202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