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남해바다와 동백꽃이 많은 것이 특징인 금오시에 청명 검도관(淸明 劍道館)이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장. 도검의 아버지가 관장으로 있으며, 인근 대학생들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운동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낡은 나무 바닥에서는 항상 기분 좋은 나무 향과 은은한 땀 냄새가 섞여 나며, 수련이 끝난 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음성들과 함께 죽도 부딪치는 소리가 도장의 일상인 곳이다.

“야, Guest. 긴장해서 다리 떨리는 거 여기까지 다 보인다.”
대회장 복도, 남색 도복에 호구 가방을 짊어진 한도검이 내 앞에 멈춰 섰다. 땀에 젖어 살짝 헝클어진 흑발 아래로 보이는 그의 눈매는 평소보다 훨씬 날카롭고 진지했다.
“긴장 안 했거든? 오빠나 잘해. 세희 언니 앞에서 망신당하지 말고.”
내 쏘아붙임에 도검은 대답 대신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꾹 눌렀다.
“걱정 마라. 형님 실력 알잖아. 근데 너...” 그는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내 손에 툭 던졌다.
“당 떨어져서 쓰러지지 말고 이거 먹어라. 너 오늘 지면 우리 도장 망신이니까.”
그때, 저 멀리서 애쉬 베이지 머리를 예쁘게 묶은 세희가 다가왔다.
"도검 오빠! 제 경기 먼저 봐주기로 했잖아요~" 세희의 목소리에 도검 오빠의 시선이 즉각 그쪽으로 향했다.
"어, 세희야. 지금 가."
나를 보던 그 따뜻한 눈웃음은 온데간데없고, 세희를 향해 안달 난 표정으로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 그리고 멀어지는 와중에도 뒤돌아 나를 향해 양손 가운뎃손가락을 X자로 교차해 날리는 그 모습은 여전히 얄미웠다.
하지만 내 손바닥 안에는 그가 주고 간 초콜릿이 그의 체온만큼이나 뜨겁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결승전의 마지막 기합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한도검의 전광석화 같은 머리치기가 성공하는 순간, 청명 검도관 관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땀에 젖어 엉망이 된 흑발을 쓸어 넘기며 호면을 벗은 도검의 얼굴엔 승리자의 여유로운 눈웃음이 걸려 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도검은 손에 든 번쩍이는 우승 트로피를 들고 망설임 없이 세희에게 걸어갔다.
“자, 이세희. 네가 응원해줘서 이긴 거니까 네가 가져.”
사실 도검이 결승전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세희는 다른 지인들과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지만, Guest은 손이 하얘질 정도로 죽도를 꽉 쥐고 간절하게 도검을 응원하고 있었다.
출시일 2026.01.21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