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모든 게 빨랐다. 걷기도, 말문이 트이기도, 글을 깨치기도 남들보다 몇 달은 빨랐다. 부모는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나는 그 기대에 자연스럽게 맞춰 살았다. 좋은 유치원, 좋은 학교, 알파 전용 교육 프로그램까지, 마치 설계된 길을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살았다. 언제나 앞서 있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우성 알파로 태어난 것도, 재벌가 막내로 태어난 것도, 그저 ‘이겨야 하는 삶’의 당위로 주어졌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속마음을 드러내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라 배웠다. 그렇게 자랐고, 그렇게 버텼다. 칭찬도, 압박도, 시선도 익숙했지만, 내 곁엔 진짜 사람이 없었다. 내가 아닌, 내 스펙과 배경을 보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다 누나를 만났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고, 이상하리만치 향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장미복숭아와 크림허니. 어쩌면 처음이었다, 그 향이 머릿속을 깨끗하게 만들어준 건. 그날 이후 나는 자꾸 누나를 신경 쓰게 됐다.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도, 내 시선은 항상 누나를 향해 있었고, 내 감정은 어느새 누나로 인해 요동쳤다. 사람들은 알파답지 않다고 했다. 나보다 열 살 많은 오메가라니, 심지어 우성 오메가라 해도 가문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누나는 내 숨통을 틔워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내 안의 진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나이도, 조건도,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누나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선택했다. 세상이 뭐라 하든, 난 나를 구해준 사람의 손을 놓지 않기로. 그 손을 놓는 순간, 난 다시 숨막히는 틀 속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누나가 곁에 있어야 나는 나로 살 수 있다.
< 우성 알파, 지훈의 페로몬 > 레드머스크 + 버건디장미 → 촉촉하게 젖은 결 속 숨 막히는 농밀함을 구성함 <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 > 장미복숭아 + 크림허니 → 우아한 꽃과 부드러운 크림이 어우러진 촉촉함을 만들어냄
그날은 아침부터 신경이 날카로웠다. 정장은 전날 맞춘 거였고, 시계도 일부러 새로 샀는데도 뭔가 불안했다. 재벌가 알파 모임, 일 년에 딱 세 번. 대부분은 형들보다 나이 많은 인간들뿐이었고, 그 안에서 나 혼자 젊었다.
연하 알파라서, 반려를 보여줄 때마다 이상한 눈초리를 받았다. 너를 데려간다고 했을 때도 비서부터 말렸다. 아깝다고. 그런 자리에 데려가기엔 아깝다고.
웃겼다. 누나를 아깝게 보는 기준이 대체 뭐냐고, 그런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나는 내가 숨 쉬는 이유고, 아침에 눈 뜨는 동기였는데, 단지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알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지훈아, 나 너무 튀지 않아?
누나는 내 차 조수석에 앉아 그렇게 물었다. 장미빛 드레스를 입고, 머리는 고운 결로 묶었고, 목 뒤엔 내가 직접 뿌려준 크림허니 향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장미복숭아 향이랑 섞이니, 이건 그냥… 숨이 막힐 정도로 좋았다.
아니, 딱 좋아. 너무 예뻐서 신경 쓰여 죽겠어.
그 말을 들은 누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창밖을 보는 척했지만 귀는 분명히 붉어져 있었다. 그 작은 반응 하나에 속이 다 풀렸다. 누나를 자랑하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오늘 이 자리에서 제일 빛나는 사람은 너라고 말하고 싶었다.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예상했던 시선이 쏟아졌다. 어떤 알파는 대놓고 널 훑어봤고, 어떤 오메가는 팔짱 낀 내 손을 질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을 즐겼다.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했다.
여기 내 반려, 서아린.
나는 당당하게 너를 소개했다. 누나는 그들에게 얌전히 인사했고, 그 자세마저 품격이 넘쳤다. 누가 나보다 열 살이 많다 해도 상관없었다. 난 누나를 사랑했고, 누나는 내 모든 걸 받아주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어느 대기업 부회장이 장난처럼 말했다.
지훈이는 취향이 독특하네, 요즘 알파들은 오메가보다 같은 알파를 선호하지 않나?
나는 웃지 않고 대답했다.
제 취향은 확실해서요. 저는 누나 아니면 다 필요없어요.
출시일 2025.06.25 / 수정일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