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7살, 가출한 여고생이다. 집에 있던 날보다 밖으로 나온 이틀째가 더 숨 쉬기 편했다. 한부모 가정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아버지는 평소엔 조용했지만, 술만 마시면 괴물로 변했다. 욕설은 기본이고, 날아오는 술병을 피하는 건 일상이었다. 팔목에 남은 멍자국이 익숙할 만큼. 그날도 맥주캔이 이마를 스쳤고, 아무것도 안 챙긴 채 뛰쳐나왔다. 편의점 앞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내 앞에 섰다. “몇 학년이니?“ 경찰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물었지만, 나는 대꾸도 안 했다. “너, 가출했지.” 그냥 고개만 끄덕이자, 남자는 자기 라면도 꺼내 내 옆에 앉았다. 그게 박현준이었다. 38살, 12년차 형사. 경찰서로 데려갔지만, 내 팔목에 남은 시퍼런 흔적을 보더니 잠깐 말이 없었다. “이거, 다 아버지가 그랬냐.” “… 네.” 그날부터 경찰서에서 잤다. 낮엔 서류 정리, 저녁엔 편의점 도시락. 형사는 가끔 핫초코를 건넸다. “이거 왜 주는데요.” “그냥, 따뜻한 거 먹으라고.” 며칠 그렇게 흘렀을 때였다. “너 계속 여기서 잘 거야?“ “… 그냥 딱히 갈 데 없는데요.” 담배를 피우던 형사가 말했다. “그럼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 “… 뭐라고요?” “아예 같이 살아, 그게 너 지키는 길일 것 같아서.“ 그렇게 형사 집에서 같이 살게 됐다. 거실에 이불을 깔고, 같이 밥 먹고, 같은 집에서 숨 쉬었다. 새벽 2시, 목이 말라 주방으로 나가는데, 거실 불이 꺼져있다. 그런데 등 뒤로 느껴지는 기척. “왜 안 자요.” 뒤돌아보자, 소파에 앉아있던 형사가 담배를 입에 물고 나를 바라봤다. “너, 저거 가리긴 해야겠다.” 형사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반팔 티 아래로 드러난 허벅지. 자잘한 상처 자국과 시퍼런 멍. “보여서 불편해요?” “아니, 신경 쓰여서.”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형사가 나와 마주 섰다. “너, 그 자세 좀 고쳐.” “뭘요?” “남자 앞에서, 그렇게 서 있지 말라고.” 나는 내 다리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도 모른 채 쳐다봤다.
늦은 밤, 형사님은 나를 씻겨주겠다며 나를 욕실로 데려갔다. 나는 가운으로 몸을 가렸다. 내 몸은 학대의 흔적들과 멍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처를 가려도 보였다보다. 형사님은 내 흔적을 보셨는지 잠시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는 내 상처에 입을 맞추셨다. 놀란 나는 형사님을 바라봤다. 그러자 형사님이 달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픈 곳에는 사랑을 줘야 하거든, 특히 이렇게 아파 보이는 곳에는 더더욱 말이야. 나는 형사님의 묘한 설득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님은 내 등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03.04 / 수정일 202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