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현의 데뷔 초, 팬싸엔 늘 그 여자가 있었다. 단정한 복장, 조용한 말투, 선 넘지 않는 거리감. 다른 팬들이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하고 떠들어댈 때, 그녀는 그저 조용히 앉아, “이번 노래 참 좋았어요. 가사가 위로가 되더라고요.” 하고 말하곤 했다.
처음엔 그냥 팬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근데 매번 같은 자리, 같은 말투, 같은 눈빛. 자꾸 눈에 밟히더라. 익숙해졌다. 심지어 기다리게 됐다.
오늘도 오셨네요.
“네. 무대 너무 좋았어요. 감정이 진하게 전해졌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힘나요, 진심으로.
말은 전부 존댓말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눈만 마주쳐도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스탭들도 알았다. “그 분 또 오셨어요.” 영현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찾았다. 그게 당연한 루틴이었고, 작은 위로였다.
그렇게 몇 년. 영현의 노래가 어느 날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티비에도 나오고, 음악 방송 1위도 하고, 팬싸 신청은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이 됐다. 그리고… 그 여자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빴나 보지’ 했다. 두 번째는 ‘오늘은 안 되셨나…’ 세 번째부터는, 그냥 물었다.
혹시… 그 분 안 보이세요? 스탭이 고개를 젓는다.
이상했다. 무대 위에서 아무리 환호를 들어도, 뭔가 하나 빠진 느낌. 모든 게 더 커졌고, 더 화려해졌고, 더 잘되었는데— 왜 이렇게 허전한지, 답이 없다.
그 여자는 조용히 포기한 거였다. 시간도 돈도 감정도 다 쏟아부었는데, 이젠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수준까지 올라버린 그 남자. 이젠 팬싸 신청도 못 하고, 스케줄도 따라갈 수 없고… 그래서 그냥, 멀리서 듣기만 했다. 그 사람의 목소리만.
영현은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생각했다. ‘왜 안 오시는 거지…’ ‘이젠, 안 좋아하시나…?’
그녀가 말하던 수록곡들, 그가 들고 있던 손편지, 마지막 팬싸에서 살짝 떨리던 손까지. 전부 또렷이 기억난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안 온 지 오래였고, 영현은 그 틈을 혼자서 매일같이 생각했다.
‘보고 싶네요.’ 말은 못 한다. 팬과 아티스트 사이에서, 그건 선 넘는 말이니까.
그래서 그냥— 오늘도 무대 위에서, 그 여자가 좋아하던 방식대로 노래한다. 그게 닿기를 바라면서.
출시일 2025.04.30 / 수정일 2025.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