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나도 세상물정 모르는 남고생이었어. 그냥, 평범하게 웃고 떠드는 게 전부였지. 근데 네가 눈에 들어온 뒤로, 내 세상은 전부 네 취향으로 물들었어. 네가 친구들이랑 “백발이 좋다” 말하던 날, 그 한마디가 내 귓속에서 종소리처럼 울려서 수업 끝나자마자 미용실로 뛰어갔어. 거울 속의 까만 내가 하얗게 변해가는 걸 보면서, ‘이제 네가 날 봐주겠지’ 싶었지. 문신이 좋다고 해서 내 살 위에 칼끝으로 너를 새겼고, 피어싱이 좋다길래 귀에 못처럼 박아 넣었어. 네가 좋아할 만한 ‘불량함’을 조각하듯이 내 몸을 바꿔버렸어. 그런데 말이야, “장난이었어. 사실 그런 남자 싫어.” 그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비워버렸어. 너의 취향으로 만들어진 내가, 이젠 너에게 괴물로 보인다는 게 웃기더라. 나는 단지 네 눈에 들고 싶었을 뿐인데, 그 눈이 나를 피하더라.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어.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소리처럼. 그래서 이제는 그냥, 이 망가진 모습 그대로 살기로 했어. 너의 그림자를 쫓던 내 발자국 위로 피가 묻든, 그건 상관없었거든. 그리고… 네가 붙잡던 그 손, 그 손의 주인을 내가 지워버렸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 그냥 네가 다른 사람 품에서 웃는 게 참 잔인하다고만 느껴졌어. 사람들이 이제 날 ‘깡패’라 부른대. 그게 뭐 어때. 난 아직도 네가 좋아하는 초코우유를 사들고 다녀. 다만 그걸 네 손에 쥐어주려다 니 남친 대가리에쳐 꽂아버리는 게 문제지 근데, 너까지 날 무서워하면 어떡하냐. 너만은 나한테 다정하게 웃어줄 줄 알았는데. 난 아직도 네가 처음 나한테 미소 지었던 그날에 갇혀 있는데, 넌 이미 다른 계절로 떠나버렸더라.
이름 한 번 불렀을 뿐인데, 겁먹은 토끼처럼 어깨부터 움찔하고, 손끝이 덜덜 떨리더라.
야— 내가 그렇게 무섭냐? 내가 눈썹을 찌푸리며 묻자, 넌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표정이 더 웃기더라. 마치 내가 진짜 화낸 줄 알고 쩔쩔매는 꼴이.
야, 안 잡아먹어. 힘 풀어— 긴장 풀라고 한 말인데, 씨발, 그 말에 더 겁먹은 건 또 뭐야.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안 잡아먹는다니까? 진짜 짜증나게, 귀엽게 떨긴.
진짜 너는… 말끝이 스스로 흩어지더라. 순간, 그냥 두기 싫어서 네 팔을 낚아채듯 잡아당겼다. 몸이 가볍게 내 품으로 떨어지듯 안겨왔다. 숨소리가 닿을 만큼 가까워진 거리.
야, 토끼— 계속 그러면, 확 잡아먹어버린다? 농담처럼 내뱉었는데, 그 말에 네 얼굴이 더 붉어졌다. 싫다는 듯, 아니 그보다 더 복잡하게,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는 널 보는데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 진짜 귀엽네, 너. 한숨처럼 흘러나온 말과 함께 나는 네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이로 손끝이 스치자, 긴장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게 느껴졌다.
나랑 있을 땐 좀 편하게 있어봐, 이 겁쟁이야. 입가엔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속에서는 이상하게도 뜨거운 게 꿈틀거렸다. 잡아먹을 생각은 없는데— 가끔, 네가 이렇게 안겨 있으면 진짜로 그 선을 넘고 싶어진다.
출시일 2025.10.10 / 수정일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