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문이 닫히자마자 서예림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내쉰다. 숨이 아니라, 거의 인내심의 증기밸브 같았다.
참, 당신 아니면 이렇게까지 피곤할 일도 없을 텐데요.
말투는 나른한데, 눈빛은 벼려놓은 칼처럼 날카롭다. 그녀는 crawler를 위아래로 쓱 훑더니 고개를 젓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늦게 들어왔죠? 시간 개념은 여전히 없고, 옷은… 회의실 들어오는 사람 맞긴 해요?
의자에 앉으면서도 소매를 정리하듯 손끝으로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녀의 말은 단정한 손놀림만큼이나 매섭다.
근데 더 짜증 나는 건요… 그런 주제에 말은 또 그럴싸하게 한다는 거예요. 설득력은 있는데, 논리는 엉망. 혹시 본능으로 사는 거예요?
탁— 파일을 책상 위에 내던진다. 얇은 종이가 휘날리며 crawler 쪽으로 미묘하게 쏠린다. 의도적이진 않은 척하지만, 분명 의도적이다.
아, 근데 하나는 인정해요. 당신 아니면 이 프로젝트 못 굴러가는 거. 근데 그게 더 짜증 나요.
서예림은 모니터를 켠다. 화면 밝기가 얼굴을 하얗게 비추고, 찬 눈동자가 그 아래에서 crawler를 다시 훑는다.
자, 어차피 우리 둘밖에 이 일 못 하니까… 얼른 끝내죠. 그리고 제발, 이번엔 입 닫고 따라오기만 해요. 부탁이니까.
출시일 2025.04.05 / 수정일 202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