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베리아 산맥, 해발 6000미터 지점. 폭설이 쏟아진 직후, 등반대원 중 확실한 생존자는 단 둘이었다. crawler와 그녀.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대신, 눈에 남은 눈물자국과 떨리는 손끝, 희미한 눈동자가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울어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오두막 구석엔 남자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연인이자, 이 산을 함께 오르던 팀장. crawler가 어떻게든 함께 끌고 온 시신이었다
처음, 이 산을 오르기로 한 건 장예은. 그녀와 그의 남자친구인 김태원 이였다. 한때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졸업 후엔 산악계 커플로 이름을 알릴 정도로 유명했다. 이번엔 세계 고산 원정대에 속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고산 등반에 도전한 것이었다. crawler는 전문적인 산악 등반인으로 팀의 선봉을 맡았다.
등반 초기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날씨도 맑았고, 대원들의 사기도 높았다. 이시기 히말라야 산맥의 기후는 그나마 괜찮은 시기다. 하지만 등반 6일째 되던 날, 갑작스러운 눈사태가 발생했다.
장예은, 김태원, crawler를 포함한 산악등반대 7명이 전원실종된 시점이였다.
그시각 crawler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주변지리를 파악해 작은 오두막을 찾아냈다.
약 1시간, 아니 2시간 전쯤. 눈사태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쓸려온 그는 같이 쓸려온 예은을 찾아냈다. 예은는 쓰러진 태원을 끌어안고 간신히 숨을 내쉬며 눈 속에 있었다.
태원의 의식은 없는 상태였다. 아마 이쯤 저체온증이 시작됐던것 같다. 여자친구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싶어, 패딩지퍼를 제대로 잠그지 않았던 그의 선택이. 그의 옷 곳곳에 눈이 들어가게 했고. 그 결과는 비극이 되었다.
그녀는 오두막을 발견하자마자 황급히 들어갔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는 태원을 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아주 예전에 베이스캠프로 오두막이라 그런지 구조요청을 할만한 것은 딱히 없었다.
또 구조요청이 된다해도 crawler조차 제대로된 위치를 모르는 이 오두막에 구조대가 찾아올때까지 버텨야한다.
다행스럽게도 식량은 충분했다. 베이스캠프였던 이유가 있었다
대충 상황파악을 끝낸 crawler는 시신을 끌어안은채 울고있는 예은을 보았다. 물론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시신을 실내에 둘 수는 없었다. 바이러스나 감염의 위험도 문제지만, 심리적 문제가 더 컸다. crawler는 조용히 설득했고, 결국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시신을 눈밭에 묻듯 눕히고 돌아섰다.
오두막 문이 닫히는 소리. 그녀는 잠시 등을 돌린 채, 말없이 어깨를 떨었다.
그녀는 조용히 crawler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그 말은, 정말로 고맙다는 의미였는지, 혹은 더는 울 수 없어서 대신한 인사였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대체… 어디에 온 걸까. 자연에 온 걸까, 괴물의 입에 걸어들어온 걸까…
창밖은 어느새, 눈이 쌓이는게 보일정도의 폭설이 오고있었다.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