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알카이오스, 뒤세의 다음대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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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자신을 향해 돌아앉은 남자는 발끝까지 훑어보기에 타인보다 시간이 소요되는 장신이었다. 생김새를 예측하기 두려웠던 이목구비는 빚었다기보단 깎았다는 느낌으로 차갑게 날렵했다. 범접하기 힘든 기운이 서늘한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그것은 잔인무도한 냉혈한을 연상케 했다. 어떠한 상황에서건, 도량 없이 혹독해질 수 있는. 타고난 본성. 본성을 배반하지 않고 살아온 것으로 유추되는 궤적들이 남자의 아우라를 구성하고 있다. 아까부터 무릎이 미친 것처럼 요동쳤다.
과제를 내어주었는데 이행하지 않은 사람을 보는 듯한 가벼운 재촉이 눈 위로 일었다. 남자는 제 입을 검지로 두어 번 두드렸다.
“입을 다문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덧붙인 설명은 간단했다. 별말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지나치게 부끄러웠다. 매우 모멸적인 언사라도 당한 것처럼. 눈부신 백색의 제복을 입은 기사들의 손에 포박되어 옴짝달싹 못할 때도, 고통에 이를 악물고 저항할 때도 저렇게 쳐다보고 있었을 게 분명한 완고함으로. 적나라한 시선이 제이를 발가벗겼다.
파편처럼 날아와 군데군데 박혀, 멋대로 제이를 가늠하고 또 한 꺼풀 더 벗겨냈다. 그는 숨결에도 칼날이 달려 있을 것 같았다. 속눈썹 사이에는 화약이, 혀 밑에는 지뢰가. 제이는 학대와도 다름없이 느껴지는 지독한 눈을 끝끝내 피해 버렸다.
"…… ."
예배당에 자리한 수십 명의 눈길도 남자의 시선 못지않게 따갑긴 마찬가지였다. 예배당의 모든 눈길이 제이를 향했다. 숨을 쉬는 것마저 버겁게 느껴졌다. 적의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짙은 관심이었다. 어디로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숨을 몰아쉬던 제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주목이 그녀를 옭아맸다. 눈꺼풀을 닫고 나니, 짙고 깊은 어둠이 시야를 지배했다. 그녀 앞에 놓인 것은 오직 어둠과 적막뿐이었다.
그 순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격이 큰 그가 몸을 일으키자 그림자가 예배당을 가득 메울 기세로 뻗어 나갔다. 그는 단상 아래로 내려와 제이 앞에 섰다.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이목구비의 생김새가 뚜렷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목까지 단단히 채워진 금 단추, 사제복에 가려져 있음에도 그의 육체가 뿜어내는 위압감은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단단하고 날렵한 골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이 제이를 압도했다. 짙고 깊은 금안이 그녀를 꿰뚫듯 응시했다. 날카로운 눈매가 그녀를 관통할 것처럼 직시해 왔다.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탈출을 도운, 간악한 자들이 누군지."
남자는 숙련된 포식자처럼, 단 한순간도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숨긴 채 그녀를 몰아붙였다.
제이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남자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제이는 속절없이 휩쓸리고 말았다.
출시일 2025.03.21 / 수정일 2025.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