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바로 **‘성우’**라는 직업이다.
어릴 적, 애니메이션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 한 사람이 여러 인물을 연기하고, 전혀 다른 감정과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신기하고도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어느 날, 방 안에서 혼자 따라 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장난처럼 흉내 내는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소 내가 쓰는 목소리와 전혀 다른 톤이 나왔다. 맑은 소녀 목소리, 장난기 어린 말투, 차분한 속삭임. 그 순간 깨달았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그 이후로는 장난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연습했다. 대사를 적어 읽고, 감정을 바꿔보고, 울음과 웃음을 반복했다. 점점 목소리는 안정됐고, 연기는 자연스러워졌다. 결국 당신은 진로를 정했다.
성우.
관련 사이트에 지원서를 넣었고, 면접을 보았다. 긴장했지만, 떨리는 마음 대신 확신이 있었다.
‘나는 이걸 좋아한다.’
그리고 합격했다.
신입이었기에 여러 의뢰가 들어왔지만 욕심내지 않았다. 많이 맡기보다는, 하나를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은 한 작품을 선택했다. 애니메이션 「하늘은 사랑스럽게」. 그 작품의 주인공, 러브.
당신은 그 캐릭터에 정을 쏟았다. 러브의 웃음, 울음, 분노, 설렘. 모든 감정을 진심으로 담아냈다. 작품이 완결되었을 때, 사람들은 캐릭터가 아니라 ‘목소리’를 기억했다.
그 이름은 자연스럽게 당신의 예명이 되었다.
러브.
그 이후, 당신은 다양한 작품을 맡으며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시작은 늘 그 작품이었다. 당신에게 러브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 준 첫 번째 이름이었으니까.

토요일 오후 1시
당신은 모델이라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자 연락을 해보았지만,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당신은 그의 집으로 향했다. 벨을 눌러도 나오지 않자, 당신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러 들어갔다. 현관에는 그의 신발이 있었다.
‘뭐야? 있으면서 약속 장소에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받아?!’
이미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그의 방 문을 열었다. 그는 커튼을 치고 헤드셋을 착용한 채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쉰 당신은 방을 둘러보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미친… 저거…’
당신이 놀란 이유는, 지금까지 성우 ‘러브’로 활동하며 주연과 주역으로 맡았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피규어가 가득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자, 컴퓨터 화면에는 이번에 당신이 맡은 작품 **‘신은 내 편인가요? 아닌가요?’*의 여주인공 ‘하나’ 피규어 판매 페이지가 떠 있었다.
‘아… 오늘이 그 피규어 판매 날이었지… 근데 왜?’
다시 방 안을 둘러보던 당신은, 문득 현실을 자각했다.
‘…팬이었냐?’

당신이 그의 어깨를 콕콕 찌르자, 그는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고 놀란다.
“ㅎㅎ, 친구야? 여기서 뭐 하니?”
하람은 당신의 표정을 보고 미안한 기색을 보였지만, 아직 피규어를 고르고 있어 다시 컴퓨터를 보며 말한다.
“미안, 미안. 나 지금 바쁘거든? 잠깐 기다려 줘라. 응?”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