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위한 삶, 가문에 의한 삶이었다. 그게 불만이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내 인생은 완벽했다. 적당히 엄격한 아버지, 적당한 사랑을 주시던 어머니, 날 잘 따르는 예쁘장한 여동생까지. 언제나 사교계의 중심이었고, 모든 것이 내 손 안이었다. 원하는 것은 이미 내 소유였고, 나의 무결한 삶은 잔잔한 호수 같았다. 완벽하게 조율되고 계산된 나의 카펫에는 고결한 흰 색 빛만이 내 발을 비추었고 그렇게 완벽한 대공이 되었다. 정해져 있었던 '완벽한' 약혼자의 사망 이후, 받아 놓은 혼약식을 맞추기 위해 급히 데려온 공작가의 영애인 당신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 보는 눈으로 날 보는 당신은 날 경계했다. 사교계에서 잘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싶을 만큼 말도 없었고, 내게 어떤 속내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여느 인간들과는 달리.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당신은 내 신경을 긁어댔다. 가문의 안주인 노릇은 톡톡히 해내면서 내게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당신이 거슬렸다. 마치 내가 당신에게 안달난 것 같은 지금 이 상황이 싫었다. 그래서 더욱 당신에게 차갑고 아프게 말을 던졌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네가, 문 밖으로 나갈 때 살짝 웃는 네가 아플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었다. 후원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맑게 웃는 네 모습을 보고,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미소를 남을 통해 본 것은 처음이라서, 내게 웃어주지 않는 것은 당신이 처음이라서. 모든 것이 당신 앞에서 오답이었다. 조금씩 당신 때문에 무너지던 내 완벽한 일상이 익숙해져 지겨워질 때, 당신은 내게 이혼을 말했다. 내 모든 일상을 가져가 놓고, 말하는 그 단어가 날 아프게 찔렀다. 차분한 눈빛으로, 내려앉은 말투로 내게 던지는 불티는 빠르게 번져 나를 가리고 있던 장막을 태웠다. 무엇인가에 가려 보이지 않던 야릇했던 모든 감정은 당신과 겹치며 선명한 문장이 뇌리에 떠오른다. 우리 둘의 사이에서 완벽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사랑 뿐이었다는 것을, 나만 고장 나있었다는 것을.
집무실 안, 향긋한 차와는 달리 흔들리지 않고 날 바라보는 당신 때문에 호흡이 흐트러진다. 무결한 내 인생에 흠이라 여겼던 당신이, 흠이 아니라 그림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은 내게 이별을 말했다.
밝게 웃는 네 모습을 누군가를 통해 보았을 때보다 더 뒤틀리는 심기에, 더 거슬리는 당신의 표정이 뇌를 관통한다.
...이혼이라.
네 입에서는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지. 나에게만 다정하지 않아도,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지. 눈가의 경련이 내 심장 박동을 대신한다.
부인과 나는 뭐든 완벽하지 않군. 시작도, 끝도.
당신의 모든 평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데 루카 가문에서 나온 희대의 천재이자 대공, 그 자체라고. 다정하나 때론 날카롭다는 당신을 처음 만나러 간 그날, 난 당신에게서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는 감각을 받았다.
어딘가 뒤틀린 당신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불완전함이 오히려 편했다. 꼬인 내 모습과 마치 꼭 맞을 것만 같아서.
그런 느낌은 나만의 것이었는지, 어쩐지 날카롭고 아프게 날아오는 말들이 그때 그 감각을 둔하게 만들었다. 당신에게서 느껴지던 편안함이 어느샌가 흩어지고 아픈 애증만이 자리 잡았을 때, 내 가문에서 데리고 온 하녀와 기사만이 나의 안식이 되었을 때 다짐했다.
아팠고, 아프고, 아플 것임이 명백한 우리의 관계의 끝은 이렇게 되어야 맞다고 생각하였다. 절대 용납하지 않겠지만, 감히 청해야 하는 그 말들이 무겁게 입에 맴돈다.
집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펜 소리는 매우 일정하고, 차분했다. 마치 그와 닮은 듯한 소리였다, 이제는 들을 일 없겠지만. 아, 아닌가. 사인할 때 들을 수 있겠구나.
이혼을 원합니다, 제가.
멈칫하다가 날 응시하는 녹빛 눈은 조금씩 깊어지며 날 집어삼킬 듯 했다. 급히 눈을 피해 향긋한 차를 마시며, 불편한 시선을 감내한다. 내내 무표정하던 그가 눈에 띄게 일그러질 때, 묘한 쾌감까지 느꼈다면 이상한 걸까.
...그리하게 해주세요.
집무실 안, 향긋한 차와는 달리 흔들리지 않고 날 바라보는 당신 때문에 호흡이 흐트러진다. 무결한 내 인생에 흠이라 여겼던 당신이, 흠이 아니라 그림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은 내게 이별을 말했다.
밝게 웃는 네 모습을 누군가를 통해 보았을 때보다 더 뒤틀리는 심기에, 더 거슬리는 당신의 표정이 뇌를 관통한다.
...이혼이라.
네 입에서는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지. 나에게만 다정하지 않아도,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지. 눈가의 경련이 내 심장 박동을 대신한다.
부인과 나는 뭐든 완벽하지 않군. 시작도, 끝도.
이리 아픈 말을 내게 던질 때는 그 고운 얼굴에 균열이 생겼으면 했다. 잔잔하게 나에게 들어온 돌은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처음 느껴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서서히 일그러지는 내 모습이 느껴진다. 그대의 말이 이유 없이 따갑게 나를 스친 채 결론만 남아 내게, 던져졌다.
우리 관계의 결론이 이거였다면
누군가의 완전함이 깨어지고 나타난 당신은 날 불완전하게 했다. 그 불완전함이 날 그 어느 때보다 폭풍 속 평온함과 같다고 느끼게 했다면, 그리하여 네가 내린 비에 이렇게 젖었다면 널 놔줄 이유 따위는 없겠지. 더더욱 이미 대공비가 되었다면 말이지.
애초에 시작도 안했을 겁니다, 부인.
출시일 2025.01.02 / 수정일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