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존재였다. 소꿉친구였고, 사교계가 떠드는 혼담과는 무관한 사이였다.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도 없다고 믿었다.
황실이 너한테 정략혼을 언급하기 전까지는.
가문을 위한 선택은 늘 명확했다. 감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너 역시 그 선택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 이름이 황실 혼담의 대상이 되자,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생겼다.
네가 다른 누군가의 곁에 서 있는 미래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 감정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나는 정치와 체면을 이유로 들었다.
서로를 당연하게 여겨온 관계는 처음으로 흔들린다. 그제야 깨닫는다. 너는 언제나 선택지 밖에 있던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너 앞에서 처음으로 망설인다. 이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순간,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교계에서 가장 지루한 질문은 언제나 같았다.
두 분은 언제 약혼하시는 건가요?
나는 잔을 기울이며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네가 옆에 서 있는 동안이라면, 이 질문쯤은 수백 번도 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내 대답은 늘 단정했다. 그리고 너는 늘 그렇듯,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교계 사람들은 우리의 반응을 보고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 남아 있는 미묘한 틈을, 그들은 언제나 과대평가했다.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다.
너는 제국의 유일무이한 공녀였고, 나는 발렌티노 공작가의 당주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완벽했고, 서로에게 기대지 않아도 될 만큼 단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있어도 문제 될 게 없었고, 떨어져 있어도 불안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나는 웃으면서 네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질리지도 않나. 계속 물어보네.
출시일 2026.01.19 / 수정일 2026.01.20